과거 강성 노동조합의 대명사였던 현대자동차 노조에 꼬리표처럼 따라붙은 수식어가 '귀족노조'였다. 국내 대기업 생산직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의 연봉을 받고 큰 복지 혜택을 누리면서도 연례행사처럼 파업을 반복하며 조단위 생산손실을 초래하는 집단 이기주의를 직격한 표현이다. '노동자 내의 상위 계급'이란 의미가 담긴 이 말은 갈수록 벌어지는 중소기업·비정규직 노조와의 임금 격차에 '정년퇴직자 자녀 우선 채용' 추진 등 일자리 세습 논란이 더해지면서 부정적인 노조 이미지를 대표하는 상징이 돼버렸다.
그런데 올 들어 이런 '귀족노조'를 대체하고 있는 조어가 등장했다. 바로 삼성전자 노조를 가리키는 '황제노조'다. 간간이 현대차 노조의 또다른 이름으로 불렸지만 이젠 삼성 노조가 확실하게 독점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이들은 연봉 1억5800만원을 받으면서 1인당 6억원의 추가 성과급(회사 전체로 보면 약 45조원 규모)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들어주지 않으면 오는 21일부터 공장을 멈추겠다고 겁박 중이다. 노조 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직접 피해 추산액만 30조원에 달한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과 한국 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중대 사안이란 얘기다.
하지만 최근 한달간 드러난 삼성 노조의 민낯은 놀랍다. 사회적 책임을 외면한 것은 물론이고 동참하지 않는 동료들의 개인 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하는가 하면 파업 투쟁을 이끌고 있는 노조위원장이 비즈니스석을 타고 해외를 누볐다. 그야말로 '황제노조'란 힐난이 전혀 과하지 않은 행태들이다.
특히 지난달 23일 경기도 평택에서 진행한 대규모 파업 결의대회를 마친 직후 일주일간 태국 휴양지로 떠난 최승호 노조위원장의 행보는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게다가 휴가 기간 중 노조 홈페이지에 올린 입장문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믿을 순 없지만 "다가올 총파업에서조차 끝내 사측의 편에 서서 동료들의 헌신을 방해한다면 더 이상 당신들을 동료로 바라보기 어려울 것"이라며 파업 불참자들을 몰아세웠기 때문이다. 개인의 휴가를 문제 삼자는게 아니다. 명분을 위한 리더의 솔선수범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461만명이 넘는 소액주주들의 재산권과 국가 경제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노사 협상의 최전선에 있어야 할 수장이 자리를 비운 건 상식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2010년부터 운영해온 '매칭 그랜트 제도'와 관련해 100여명의 직원들이 벌인 '기부 약정 취소 릴레이'는 어떤가. 매달 일정 금액을 내면 회사가 일대일(1대1)로 맞춰 추가로 기부하는 방식인데 일부 노조원들이 "내 돈으로 생색내는게 싫다"면서 해당 약정을 깬 것이다. 희귀질환 아동을 비롯해 사회 취약계층에 이 기부금을 쓸 바엔 차라리 조합비로 내겠다며 다른 직원들에게 이를 권유했단 전언은 가히 충격적이다. 사적 이익 앞에선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으면서 사회적 약자에겐 한없이 인색한 국내 최대 규모의 노조를 어떻게 지지할 수 있을까.
앞서 천하의 현대차 노조도 코로나(감염병) 사태를 겪으면서 "책임 있는 행동이 조합원의 위상을 강화한다"는 기조 아래 "명분도 실리도 없는 파업은 안하겠다"고 약속했다. 사측에 딴지를 걸기보단 노사 화합으로 경영 정상화를 이뤄내는게 조합원 이익을 극대화하는 지름길이란 판단에서다. 그러면서 "소모적이고 소득 없는 협상을 청산해 '귀족노조'란 오명을 벗겠다"고 선언했다. 일단 삼성 노조도 '황제노조'로 요약되는 구태부터 걷어내고 '명분과 실리'를 챙겨야 한다. 무엇보다 경쟁국들이 천문학적 보조금을 쏟아부으며 앞다퉈 반도체 패권을 노리는 시점에 내부 갈등으로 스스로 무너지는 자해 행위만은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