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의 초격차와 대체불가 전략[투데이 窓/최연구]

최연구 과학문화칼럼니스트
2026.08.04 04:00

패스트팔로어 전략은 AI시대엔 안 통해
초격차 비결은 대체불가 생태계 구축
제조AI, 공공AI, K-컬처에 집중해야

기존 한국경제를 설명하는 적절한 용어로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를 들 수 있다. 선진국이 먼저 개발한 기술을 빨리 수용해 고품질·저비용으로 세계 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이다. 반도체, 자동차, 조선, 디스플레이 산업 등의 성공은 이런 전략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이 방식이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과기부 등 부처 업무보고에서 "AI는 인류가 불을 발견하고 증기기관과 전기를 발명한 것에 준하는 문명사적 전환이며 추격자가 아닌 선도자가 될 결정적 기회"라고 강조했다. AI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서 오늘의 혁신이 내일이면 오픈소스가 되고, 기술 우위도 고작 몇 달 정도 유지될 뿐이다. 중요한 건 '얼마나 빨리 따라가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대체불가능한 존재가 되느냐'다. 지난 6월,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은 집권 2년 차 국정 비전으로 '대체불가 대한민국'을 제시했다. 오래전 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은 경쟁자가 넘볼 수 없는 기술과 조직의 우위를 뜻하는 초격차 개념을 제시했다. 올 초 출간한 『다시 초격차』에서 그는 패스트 팔로어 전략은 유효하지 않으며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될 것을 주문했다.

초격차가 기업 전략이라면, 대체불가는 국가전략이라 할 수 있다. 이젠 초격차의 의미 자체가 달라졌다. 산업화 시대의 초격차는 좋은 제품을 싸게 많이 만드는 능력이었고, 디지털 시대에는 뛰어난 플랫폼을 선점하는 게 경쟁력이었다. 한편 AI 시대에는 좋은 AI 모델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우위를 보장할 수 없다. AI 모델은 빠르게 복제되고, 성능 격차는 더 빨리 좁혀지기 때문이다. 진짜 초격차의 비결은 '대체불가 생태계' 구축에 있다. TSMC와 ASML이 대표 사례다. 이들의 경쟁력은 수십 년에 걸쳐 축적한 기술, 공급망, 고객 신뢰, 인재, 특허, 산업 표준이 생태계를 이룬 데서 나온다.

그렇다면 한국은 뭘로 대체불가 국가가 될 수 있을까. 미국처럼 초거대 AI 모델을 독점하기도 어렵고, 중국처럼 거대한 내수시장과 데이터 규모를 갖추기도 어렵다. 우리의 선택지는 AI를 한국만의 강점과 결합해 독자적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다음 세 가지에 집중해야 한다.

첫째, 제조 AI다. 한국은 반도체, 자동차, 조선, 스마트팩토리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기반을 갖추고 있다. 최근 발표된 '3대 메가프로젝트'가 호남·충청·영남 등 비수도권에 반도체,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 인프라 구축을 위해 약 1,500조 원을 투입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AI가 물리 세계를 움직이는 시대에는 제조 경쟁력이 곧 AI 경쟁력이며, 피지컬 AI와 산업용 AI 에이전트는 산업의 새로운 표준이 될 수 있다.

둘째, 공공 AI와 AI 기본사회다. AI는 거대기업이 독점하는 기술이 아니라 국민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사회 인프라가 돼야 한다. 공공 AI는 행정·교육·의료·복지의 혁신을 이끌고, AI 기본사회는 모두가 AI 혜택을 누리는 사회다. 특히 축적된 전자정부와 디지털 행정 경험은 공공 AI 모델을 위한 소중한 자산이다.

셋째, K-컬처와 K-헤리티지 AI다. AI 시대의 핵심 자산은 대체불가 데이터이며, 그중 문화 데이터는 희소한 전략 자산이다. K-팝, 드라마, 영화, 웹툰, 게임, 한글, 전통예술, 국가유산은 다른 나라가 대신할 수 없는 한국만의 문화 자본이다. 이를 디지털 아카이브, 지능형 메타데이터, 생성형 AI와 결합하면 독자적 문화 AI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

결국 AI 시대 초격차는 뛰어난 AI 모델을 만드는 경쟁의 문제가 아니다. 산업에서는 제조 AI, 사회적으로는 공공 AI와 AI 기본사회, 문화에서는 K-컬처와 K-헤리티지 AI가 연결된 생태계를 구축할 때 한국은 대체불가 AI 강국이 될 수 있다.

최연구 과학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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