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성과급 지급 방식을 둘러싼 기류가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달하는 성과급이 계좌에 직접 입금되는 방식이었으나, 최근 일정 기간 매도가 금지되거나 특정 조건을 충족해야 지급되는 자사주 중심의 주식 보상 방식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현재 거론되는 자사주 보상안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나뉜다. 주식을 먼저 받되 일정 기간 매도를 제한하는 '제한조건부주식(RSA)', 약속된 기간 재직 후 주식을 받는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 경영 목표 달성도에 따라 지급량이 달라지는 '성과조건부주식(PSU)'이 대표적이다. 이들 제도 모두 세부 구조에 따라 주식이 묶이는 시점과 현금화 조건이 달라진다.
사측은 이를 글로벌 빅테크 수준의 장기 책임경영을 구현하고 핵심 인재를 지키기 위한 선진 보상제도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현금이 필요해도 쓸 수 없고 변동성이 큰 주식을 강요한다는 임직원의 비판과 소액주주 가치를 훼손한다는 주주들의 불만이 동시에 분출하며 심각한 이해관계 충돌을 빚고 있다.
기업이 복잡한 법적 절차와 수수료, 내부 반발의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자사주 카드를 밀어붙이는 배경에는 경영·재무적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첫째, 대규모 투자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실질적 현금 유출 방지 목적이다. 반도체 산업은 주기적으로 수십조 원 규모의 시설 투자와 연구개발 비용이 투입되어야 하는 대표적인 자본 집약적 기술 전쟁터다. 사상 최대 흑자를 기록한 해에는 성과급만 수십조 원에 달하는데, 이 엄청난 금액을 전액 현금으로 지급할 경우 유동성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 현금 대신 신주 발행이나 이미 보유 중인 자사주를 활용하면 현금 유출 없이 보상을 집행하고, 이를 통해 확보한 유동성으로 차세대 공정 개발이나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 등 미래 투자 재원으로 사용할 수 있다. 최근 반도체 주가가 고점 대비 조정을 받는 국면도 이 카드에 힘을 싣는다. 주가가 떨어졌을 때 자사주를 확보해 두면,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물량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핵심 기술 인력의 이탈을 차단하는 강력한 '락인(Lock-in) 효과' 때문이다. 애플,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빅테크는 전체 보상 패키지에서 RSU 등 주식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주식 중심 보상체계가 뿌리내려 있다. 마이크론은 최근 미국·대만·일본·싱가포르 등 해외 거점에서 HBM 양산 경험을 갖춘 한국 엔지니어를 겨냥해 채용에 나섰고, 영주권 스폰서 비용까지 지원하는 등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며 국내 기업들의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 RSU나 RSA, PSU와 같은 보상 방식은 실제로 주식을 받거나 팔기까지 최소 1년에서 3년 이상의 의무 재직 기간을 거쳐야 하므로, 결과적으로 경쟁사나 해외 빅테크로의 인재 이탈을 막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처럼 기업이 얻는 실리에도 불구하고, 갈등의 본질은 '리스크와 이익의 구조적 불균형'에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현금 유출을 막고 인재를 묶어두는 장점이 있는 반면, 주가 변동성에 따른 손실 위험은 원치 않아도 임직원과 기존 주주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기 때문이다. 최근 52주 동안 삼성전자 주가는 6만 7500원에서 38만 원까지, SK하이닉스는 24만 4000원에서 300만 2000원까지 출렁였다. 고점과 저점의 격차가 각각 5배, 12배를 넘어설 만큼 반도체 업황에 따른 변동성이 극심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무 보유 기간(Lock-up)' 동안 업황이 침체하여 주가가 하락하면 피땀 흘려 올린 성과에 대한 보상 가치가 반토막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 또한 대출 이자 상환이나 전세 보증금, 생활비 등 당장 현금이 필요한 가계 입장에서 1년에서 3년 동안 매도가 불가능한 주식은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사실 성과급을 주식으로 준다는 발상 자체는 새롭지 않다. 과거에도 스톡옵션이라는 형태로 널리 활용됐지만, 주가가 올라야만 가치가 생기는 조건부 보상이어서 실효성 논란으로 지금은 시들해진 분위기다. 그러나 스톡옵션과 RSU·RSA는 리스크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스톡옵션은 주가가 행사가(行使價) 아래로 떨어지면 행사를 포기하면 그만이어서 손실이 '기회비용'에 그치지만, RSU·RSA는 성과급을 이미 실물 주식으로 받았기 때문에 주가가 떨어지면 그만큼 고스란히 손실이 된다. 포기할 자유조차 없는, 훨씬 더 큰 리스크에 노출되는 셈이다.
과세 구조의 허점도 치명적이다. 주식 보상은 권리가 확정(Vesting)되는 시점의 평가금액을 기준으로 최고 45%(지방소득세 포함 시 49.5%)의 근로소득세가 부과된다. 의무 보유 기간 동안 매도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원천징수 세금부터 현금으로 내야 하므로, 이후 주가가 폭락하면 세금은 고점에서 미리 내고 손실만 입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
기존 소액주주들 역시 가치 훼손을 우려하고 있다. 성과급 지급을 위한 신주 발행이나 자사주 대량 처분은 지분 희석으로 이어져 주가 상승을 제약한다. 더욱이 자사주를 소각해 주주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원칙은 이미 시행 중인 법이다. 금년 3월 6일 공포·시행된 3차 상법 개정으로, 기업은 취득한 자사주를 원칙적으로 1년 내 소각해야 하고 임직원 보상 등에 예외적으로 활용하려면 주주총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 결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성과급을 자사주로 주려면, 소각 원칙의 예외를 인정받기 위해 주주들에게 그 타당성을 매년 입증해야 한다.
주식시장에서는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리스크가 동시에 감지된다. 수만 명의 임직원이 대규모 주주 그룹으로 편입되면서 회사의 성장과 주가 부양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공유하게 된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의무 보유가 해제될 때마다 대량 매도 물량이 쏟아지는 '오버행(Overhang)' 리스크가 상시화 될 거란 부정적인 의견도 많다. 같은 시기 주식 수령자들의 의무 보유 해제일에 물량이 한꺼번에 몰리는 '매도 병목' 현상이 반복될 우려가 큰 것이다.
자사주 성과급 카드는 유동성과 인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경영전략이다. 그러나 임직원들과 투자자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면 갈등과 불신만 증폭시킬 뿐이다. 따라서 자사주 성과급 제도가 연착륙하려면 일방적 강요가 아닌 확실한 제도적 안전장치가 전제되어야 한다. 첫째,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 SK하이닉스는 이미 직원이 원할 경우 성과급의 10~50%를 자사주로 받을 수 있는 '주주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는데, 최근 임단협에서는 오히려 이 선택권을 없애고 자사주 지급을 기본값으로 바꾸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주식을 일률적으로 강요하기보다, 지금의 선택권 구조를 더욱 정교하게 디자인해야 한다. 둘째, 주가 변동 리스크를 감수하고 자사주를 선택한 직원에게 일정 비율(예: 10~20%)의 주식이나 현금을 추가로 얹어주는 '자사주 매칭 지원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셋째, 임직원 보상용으로 지급되는 수량만큼 장내 자사주를 추가 매입해 소각해야 한다. 이는 지분 희석으로 인한 주가 하락의 우려를 털어내고 장기적인 주가 상승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기존 주주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다.
현재 삼성전자는 특별경영성과급을 자사주로 지급하는 안에 노사가 합의하고, 지급 주식의 3분의 1은 즉시 처분하되 나머지는 1년과 2년 뒤 나눠 팔 수 있도록 하는 안을 마련했다. SK하이닉스는 협상 초기 단계로, 사측이 성과급의 상당 부분을 자사주로 전환하는 안을 노조에 제안했지만 '전액 현금'을 전제로 한 기존 합의를 흔든다는 반발에 부딪혀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이번 시도는 국내 산업계 전반의 성과급 체계로 확산될 수 있는 선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성과급을 둘러싼 기류는 이미 바뀌기 시작했다. 그 변화가 불신이 아닌 신뢰로 이어지려면, 사측이 외쳐온 '장기 책임경영'이 일반 주주와 임직원의 희생만을 담보로 한 구호가 아님을 확실한 제도적 대책으로 증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