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산업의 기이한 영토 전쟁

김우현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글로벌협력처 홍보팀장
2026.09.27 07:00

김우현의 위인사이트(We-in-Sight) 제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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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소멸의 위기 속에서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내세우는 핵심카드는 단연 '기업 유치'다. 파격적인 세제 혜택, 무상에 가까운 부지 제공, 각종 보조금을 무기로 타 지역의 우량 기업과 유망 스타트업을 끌어오는 데 행정력을 쏟아붓는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보자. A 지역의 기업이 더 좋은 조건을 찾아 B 지역으로 가 둥지를 틀었을 때, 국가 전체 파이가 단 1원이라도 커졌는가?

알짜 기업을 빼앗긴 A 지역은 산업 공동화와 세수 부족으로 휘청거리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또 다른 C 지역의 기업을 더 자극적인 혜택으로 유인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좁은 국토 안에서 벌어지는 이 소모적인 쟁탈전은 진정한 지역 발전이 아니다. 지자체 간 성과주의가 낳은 '카드 돌려막기식 제로섬 행정'에 불과하다.

이제는 외부의 기업을 탐내는 '유치 호객'에서 벗어나, 우리 지역에 이미 뿌리를 내리고 있는 기업의 잠재력을 키우는 '내생적(Endogenous) 발전'으로 패러다임을 완전히 전환해야 한다. 예컨대 지역 내에 자동차 램프 제조 기술이 뛰어난 강소기업이 자리 잡고 있다면, 모터나 배터리, 차량용 반도체 기업이 없다고 타 지역의 공장을 빼앗아 올 궁리를 할 필요가 없다.

램프 기업이 보유한 정밀 광학 및 전장 기술에 집중적인 R&D와 스케일업 자금을 지원해 주면 된다. 그 기업 스스로가 광학 제어를 넘어 모터 컨트롤러,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 차량용 센서 모듈 영역으로 사업의 가지를 뻗어나가도록 '기술 스핀오프(Spin-off)'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다.

이미 검증된 지역 기업의 고유 역량을 비옥한 토양 삼아 새로운 산업군을 싹틔우는 것, 이것이야말로 경쟁자의 살을 깎지 않고 전체 시장의 크기를 키우는 가장 정직한 성장 모델이다. 이스트먼 코닥(Kodak)의 창업자 조지 이스트먼은 미국 뉴욕 주(州) 작은 소도시 로체스터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당대 수많은 기업이 대도시로 본사를 옮기며 단기적 이익을 좇을 때, 이스트먼은 자신이 뿌리내린 로체스터 지역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을 로체스터 대학교 설립과 음대, 병원, 기술 연구소 등 지역 인프라 확충에 과감히 쏟아부었다. 지역 사회 전체의 기초 체력을 키우는 것이 곧 코닥의 R&D 인재를 확보하고 기업을 영속시키는 길임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이다. 코닥과 로체스터는 서로를 쥐어짜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단단한 하나의 생태계였다.

남의 떡을 빼앗아 채운 지자체의 실적은 모래성처럼 허망하다. 조건이 더 좋은 또 다른 지역이 나타나면 기업은 언제든 다시 짐을 싸기 마련이다. 행정이 집중해야 할 일은 화려한 유치 경쟁이 아니다. 묵묵히 땀 흘리며 지역을 지켜온 토착 기업들이 다음 단계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체질을 바꿀 수 있도록 지속 가능한 사다리를 놓아주는 것이다.

밖에서 굴러온 돌을 탐내기보다 내 땅에 박힌 원석을 갈고닦아 보석으로 만드는 지역의 우직함이 있을 때, 비로소 대한민국 전역에 자생력을 갖춘 건강한 산업 지도가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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