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고(Garage)를 잃어버린 청년들

차고(Garage)를 잃어버린 청년들

김우현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글로벌협력처 홍보팀장
2026.06.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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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현의 위인사이트(We-in-Sight)

[편집자주] 과거의 지혜로 내일의 혁신을 읽는 [위인사이트(We-in-Sight)]를 연재합니다. 집필을 맡은 김우현 팀장은 20여 년간 대학에서 창업생태계의 탄생과 성장을 지원해온 전문가입니다. 현장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역사 속 위인들의 삶을 현대적 기업가정신으로 재해석하여 오늘날의 창업가들에게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과 따뜻한 격려를 전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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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창업 현장에서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 동안 수많은 창업 기업의 탄생과 소멸을 지켜봤다. 그동안 대한민국 창업생태계는 몰라보게 풍요로워졌다. 정부와 지자체, 대학이 쏟아내는 창업지원금은 매년 역대 최대를 기록하고 세련된 공유오피스와 고성능 장비가 무상으로 지원된다.

인프라만 보면 지금은 바야흐로 '창업하기 가장 좋은 시대'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풍요로움 속에서 필자는 깊은 우려를 느낀다. 가끔 현장의 청년들을 보며 동료들과 이런 씁쓸한 대화를 나누곤 한다. "과거 창업가들은 절벽 끝에 선 심정으로 사력을 다해 뛰어내렸는데, 요즘 창업가들은 절벽 끝에 안락하게 의자를 펴고 앉아 경치 구경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과도하게 촘촘한 지원 제도의 그물이 창업가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결핍'과 '야성'을 거세해 버린 것은 아닐까. 지금 우리 생태계에 필요한 것은 따뜻한 격려가 아니라, 창업의 본질을 되묻는 뼈아픈 경종이 아닐까.

우리가 동경하는 글로벌 테크 거인들의 출발점은 눈부신 인큐베이팅 센터가 아니었다. 어둡고 퀴퀴한 '차고(Garage)'였다.

1976년,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잡스의 부모님 집 차고에서 애플을 창업했다. 자금이 없어 귀중품을 팔아 부품을 샀고, 난방도 되지 않는 공간에서 밤을 새우며 납땜을 했다. 빌게이츠 역시 하버드를 자퇴하고 뉴멕시코주의 허름한 모텔방과 차고를 전전하며 마이크로소프트를 일구었다.

현대의 가장 파괴적인 혁신가로 꼽히는 일런 머스크 테슬라·스페이스X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또 어떤가. 페이팔의 전신인 엑스닷컴(X.com)을 창업할 당시, 사무실 세를 아끼려고 밤에는 그 사무실 소파에서 자고, 샤워는 인근 YMCA에서 해결하며 온 몸으로 데스밸리를 돌파했다.

그들을 움직인 것은 정부의 무상 보조금이 아니었다. 내 손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지독한 열망, 그리고 당장 내일 생존해야 한다는 '헝그리 정신'이었다. 실패하면 끝이라는 절박함이 그들의 감각을 날카롭게 깨웠고, 그 척박한 토양에서 피어난 야성이 지금의 글로벌 시장에서의 역사를 만들었다.

반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일부 창업 현장은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어 있다. 매출이나 고객 지표보다 '정부 지원금 몇 억원 달성'이 창업가의 훌륭한 스펙으로 둔갑한다. 이른바 '지원금 사냥꾼(Grant Hunter)'의 등장이다.

발표 평가용 화려한 PPT를 만드는 기술은 날로 늘어가지만, 정작 시장에서 고객과 부딪히며 피를 흘리려는 청년들은 줄어들고 있다. 실패의 리스크를 정부가 대부분 흡수해주다 보니, 비즈니스 모델이 무너져도 위기감을 느끼지 못한다. 지원금이 끊기면 사업도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절박함이 없으니 피벗(Pivot, 사업 방향 전환)의 타이밍을 놓치고, 헝그리 정신이 없으니 작은 규제나 시련에도 쉽게 주저앉는다. 온실 속에 서 자란 화초는 야생의 차가운 바람을 견뎌낼 재간이 없다.

창업지원제도의 본질은 창업가를 끝까지 먹여 살리는 '영양제'가 아니다. 스스로 불을 지필 수 있도록 초기에 불씨를 얹어주는 '마중물'이어야 한다. 현재의 생태계는 실패의 완충지대를 제공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위대한 기업가를 키워내는 '도전의 야성'을 자극하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

정부와 대학의 지원 정책 역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단순히 '창업 기업 수'라는 양적 지표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창업가가 시장에서 자생력을 가질 수 있도록 거친 환경을 견디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때로는 지원의 규모를 줄이더라도, 진짜 시장의 냉혹한 피드백을 빠르게 맞닥뜨리게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그들을 살리는 길이다. 창업은 낭만적인 취미 활동이 아니다.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걸고 치르는 가장 치열한 전쟁이다. 풍족한 지원 환경은 축복이지만, 동시에 창업가의 야성을 잠재우는 가장 달콤한 독약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정부지원사업에 혼신의 열정을 바치는 청년 창업가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에게는 스티브 잡스가 차고에서 품었던 그 지독한 절박함이 있는가. 일론 머스크가 소파에서 잠들며 꾸었던 무모한 비전이 있는가.

안락한 절벽 끝에서 내려와 스스로를 척박한 차고로 밀어 넣어라. 결핍을 두려워하지 않고 온몸으로 시장과 부딪힐 때, 비로소 세상을 뒤흔들 진짜 혁신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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