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창업 생태계, 도전은 자라지 못한다

콘크리트 창업 생태계, 도전은 자라지 못한다

김우현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글로벌협력처 홍보팀장
2026.08.0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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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현의 위인사이트(We-in-Sight) 제 5화

[편집자주]  과거의 지혜로 내일의 혁신을 읽는 [위인사이트(We-in-Sight)]를 연재합니다. 집필을 맡은 김우현 팀장은 20여 년간 대학에서 창업생태계의 탄생과 성장을 지원해온 전문가입니다. 현장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역사 속 위인들의 삶을 현대적 기업가정신으로 재해석하여 오늘날의 창업가들에게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과 따뜻한 격려를 전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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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대한민국에서 '창업'은 국가적 경제 활력의 핵심 키워드였다. 정부와 유관기관들은 앞다퉈 스타트업 활성화를 외치고, 대학마다 창업을 유도하는 화려한 슬로건이 넘쳐난다. 바야흐로 '창업 창조의 시대'다. 하지만 이 생태계의 중심에서 청년들을 지켜본 필자의 마음은 솔직히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말 성찬뿐인 창업 문화 속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가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도전정신'의 실종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창업 신(Scene)은 철저히 계산된 안전지대 안에서만 움직이고 있다. 실패 확률을 정교하게 낮추는 기술, 리스크를 회피하는 비즈니스 모델, 정부 지원금 요건에 딱 맞춘 규격화된 아이디어만 양산된다. 겉으로는 '창조'를 말하지만, 정작 기존의 판을 뒤흔들거나 자신의 전부를 던지는 '진짜 도전'은 찾아보기 힘들다.

창업이란 자연의 섭리와 같다.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거목으로 성장하려면 유연하고 부드러운 토양, 적절한 양분과 수분, 그리고 바람에 흔들릴 수 있는 유연성이 필수적이다. 흙이 부드러워야 뿌리가 사방으로 뻗어 나갈 수 있고, 예상치 못한 시련을 겪으며 자생력이 길러진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우리나라의 창업 환경은 너무 튼튼하다 못해 지나치게 단단하다. 정부의 촘촘한 가이드라인, 대학의 정형화된 창업 평가 지표,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경직된 지원 프로세스가 얽히고설켜 창업 생태계 바닥을 마치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게 다져놓은 형국이다.

실패하지 않도록 사방에 쳐놓은 안전펜스와 매뉴얼이라는 콘크리트 바닥은 청년들의 발걸음을 안전하게 만들었을지언정 거침없이 대지를 뚫고 나갈 뿌리의 야성을 가로막고 있다. 이 단단한 콘크리트 바닥을 과감히 걷어내지 않는 한, 대지를 흔드는 새로운 도전정신은 결코 살아날 수 없다.

우리가 기억하는 대한민국 경제의 전설적인 순간들은 모두 콘크리트 틈새가 아닌, 황무지 맨땅에서 피어난 야성의 결과물이었다.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삶은 도전 그 자체였다. 1970년대 초, 조선소 건설 경험도, 배를 만든 경험도 없던 대한민국에서 그는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 한 장과 백사장 사진 한 장을 들고 영국으로 건너가 차관을 도입하고 선박을 수주했다. 모두가 "미친 짓"이라며 혀를 찼던 중동 건설 시장 진출 역시 "이봐, 해봤어?"라는 한마디로 돌파해 냈다. 계산기만 두드렸다면 결코 시작조차 할 수 없었던 맹목적이고 무모한 도전이었다.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의 '도쿄 선언' 역시 시대를 관통하는 거인의 승부수였다. 1983년, 그의 나이 73세 때였다. 주변의 모든 참모와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의 반도체 진출은 시기상조이며 무모한 자살행위"라고 만류했다. 고령의 나이에 가만히 수성에만 전념해도 될 위치였지만, 그는 국가의 미래를 걸고 반도체라는 초정밀 하이테크 산업에 과감히 몸을 던졌다. 그 노회한 기업가의 심장에 타올랐던 청년 같은 도전정신이 없었다면, 오늘날 글로벌 반도체 강국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주영의 백사장과 이병철의 73세 반도체 도전은 우리에게 묻는다. 과연 지금의 창업 환경에서 이런 기적이 다시 나올 수 있겠는가. 현행 정부 지원 사업의 평가 기준과 잣대로 심사했다면, 정주영의 조선소 계획은 '현실성 부족'으로, 이병철의 반도체 프로젝트는 '리스크 과다'로 서류 심사에서 탈락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청년 창업가들에게 필요한 것은 잘 닦인 콘크리트 도로 위를 달리는 매끄러운 세단이 아니다. 길이 없는 거친 정글을 헤쳐 나가는 사륜구동의 야성이다. 실패가 두려워 정부 지원금의 테두리 안에서 소소한 플랫폼 중개 서비스나 유행하는 아이템을 복제하는 데 머문다면, 그것은 창업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직장 생활일 뿐이다.

이제 대학과 정부, 그리고 사회가 구축해 놓은 단단한 창업 환경의 문법을 깨야 한다. 창업가들이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경치를 구경하게 만들 것이 아니라, 흙탕물이 튀고 돌뿌리에 걸려 넘어지더라도 유연하고 깊은 대지 위에서 마음껏 구르고 넘어지게 배려해야 한다.

완벽한 사업계획서와 실패 없는 안전망을 요구하는 경직성을 걷어내고, 무모해 보이지만 세상을 바꿀 만한 거대한 꿈에 베팅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실패의 흔적조차 자양분이 될 수 있는 부드러운 흙을 제공하는 것, 그것이 창업지원 제도가 지향해야 할 진짜 목적이다.

과거의 거인들은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맨손으로 길을 냈다. 지금의 청년들은 그 어느 시대보다 풍요로운 자원을 쥐고 있다. 부족한 것은 자본이 아니라 오직 하나, 콘크리트를 뚫고 솟아오르겠다는 서슬 퍼런 도전정신이다. 안전한 온실을 깨고 나와 거친 대지 위에서 당신만의 위대한 도전을 시작하라. 역사는 언제나 안전을 택한 자가 아닌, 위험을 무릅쓴 도전자의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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