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고(忍苦)의 시간과 서툴러도 부딪쳐 볼 기회의 상실

인고(忍苦)의 시간과 서툴러도 부딪쳐 볼 기회의 상실

김우현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글로벌협력처 홍보팀장
2026.08.2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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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현의 위인사이트(We-in-Sight) 제6화

[편집자주]  과거의 지혜로 내일의 혁신을 읽는 [위인사이트(We-in-Sight)]를 연재합니다. 집필을 맡은 김우현 팀장은 20여 년간 대학에서 창업생태계의 탄생과 성장을 지원해온 전문가입니다. 현장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역사 속 위인들의 삶을 현대적 기업가정신으로 재해석하여 오늘날의 창업가들에게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과 따뜻한 격려를 전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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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현장에서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초기 창업가들을 만날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앞설 때가 많다. 그들의 눈빛에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설렘보다, '빨리 무언가를 증명해내야 한다'는 극심한 조바심과 불안감이 먼저 읽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창업 생태계는 초기 창업가들에게 가혹할 정도로 빠른 성장을 재촉한다. 정부 지원 사업은 몇 개월 만에 매출과 고용 지표를 요구하고, 투자 시장은 완벽하게 정제된 비즈니스 모델만을 기다린다. 조금이라도 서툰 티가 나거나 시행착오를 겪으면 시장은 이내 냉담해진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첫 번째 계단이 사라지면 두 번째 계단은 존재할 수 없다. 모든 위대한 창조물은 거친 서툼의 시간을 거쳐 비로소 단단하게 숙성되는 법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창업가들에게 '헤매도 괜찮은 시간'을 허락하고 있는가? 서툴러도 부딪쳐 볼 기회 자체를 박탈당한 채 온실 속 조화(造花)처럼 규격화된 성공만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역사 속 위인들의 위대한 업적 뒤에는 우리가 보지 못했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외면했던 길고 척박한 인고의 시간이 숨겨져 있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기까지 겪은 실패는 자그마치 수만 번에 달한다. 만약 에디슨이 현대의 창업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했다면 어땠을까. 1차 년도 중간 평가에서 '성과 미달'이나 '기술적 실현 가능성 부족'으로 지원 중단 판정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다. 단지 전구가 작동하지 않는 수만 가지의 이유를 찾아냈을 뿐이다"라며 숙성의 시간을 묵묵히 견뎌냈다. 서툰 시도들이 켜켜이 쌓여 실력이 되었고, 결국 인류의 밤을 밝히는 혁신으로 이어졌다.

마리 퀴리 부인의 라듐 발견 역시 낭만적인 천재성의 결과가 아니었다. 그녀와 남편 피에르 퀴리가 라듐을 분리해내기 위해 보낸 곳은 사방이 뚫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이가 갈리는 허름한 목조 창고였다. 그곳에서 퀴리 부인은 4년 동안 수 톤에 달하는 피치블렌드(우라늄 광석)를 직접 커다란 쇠막대로 저어가며 정제하는 단순하고 고된 노동을 반복했다. 사방에 독성 가스가 가득하고 몸이 망가져 가는 서툴고 척박한 실험의 과정이 없었다면, 현대 의학과 과학의 기초가 된 방사능 연구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조선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의 삶은 더욱 극적이다. 관노라는 천한 신분에서 시작해 정4품 호군에 이르기까지, 그가 거친 세월은 철저한 인내와 숙성의 연속이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영남 관아의 노비 시절, 그는 무기를 고치고 보수하는 허드렛일을 하며 서툴게 기술을 익혔다. 조정이 그를 알아보기까지, 그리고 그가 자격루와 측우기라는 시대를 앞서간 발명품을 만들어내기까지는 수십 년간 묵묵히 칼날을 벼린 암흑의 시간이 있었다. 그의 천재성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신분의 한계 속에서 기술을 연마하며 견뎌낸 인고의 세월이 빚어낸 결정체였다.

위인들이 몸소 보여준 이 엄연한 진리는 오늘날의 창업가들에게 위대한 위로이자 경고를 건넨다. 창업 초기의 서툼과 부족함은 부끄러운 결점이 아니라, 위대한 기업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자연스러운 통과의례다. 지금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부족함을 견디는 과정 자체가 실력이다.

지금 당장 성과가 나지 않고, 비즈니스 모델이 흔들리는 것은 창업 초기에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진짜 실력은 화려하게 포장된 PPT 마케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창고에서, 묵묵히 쇠막대를 저으며, 수만 번의 안 되는 이유를 마주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버텨내는 그 '인고의 과정' 자체가 창업가의 진짜 뼈대가 되고 근육이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 창업 문화는 이 단단해지는 과정을 건너뛰라고 부추긴다. 설익은 과일을 억지로 짜내어 즙을 만들 듯, 준비되지 않은 청년들을 시장의 전쟁터로 등 떠밀고 있다.

이제 대학과 정부, 그리고 우리 사회의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 창업가들에게 단기적인 성과 지표를 들이대며 목을 죌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마음껏 헤매고, 서툴게 부딪히며, 자신만의 솔루션을 숙성시킬 수 있는 '시간적 버퍼(Buffer)'를 제공해야 한다.

실패를 용인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원금 회수를 면제해주는 소극적인 차원에 그쳐서는 안 된다. "지금은 서툴러도 괜찮다", "부족함을 채워나가는 과정 그 자체를 응원한다"는 사회적 신뢰와 인내심을 보여주는 것이 먼저다. 흙 속의 씨앗이 겨울을 버텨내야 봄에 싹을 틔우듯, 초기 창업가들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조명이 아니라 묵묵히 기다려주는 따뜻한 대지의 품이다.

이제 막 거친 바다로 배를 띄운 청년 창업가들이여, 지금 서툴고 헤매는 자신을 두고 자책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 에디슨의 실패가, 퀴리의 창고가, 장영실의 노비 시절이 그러했듯, 지금 당신이 겪고 있는 그 외롭고 부족한 시간들이 야생의 시장에서 살아남을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어가고 있다. 조급해하지 말고 당신의 시간을 묵묵히 채워라.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숙성된 와인이 가장 깊은 향을 내듯, 시련을 관통한 당신의 기업은 마침내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위대한 가치를 증명해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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