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 컴퓨터 다 잘할 것 같죠? 아니에요. 두 손으로 영어 타자도 못치고 윈도우 사용법도 몰라요.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 태블릿을 사용하니까요." 지난 1일 서울 태릉고등학교에서 만난 노혜윤 정보교사는 "모바일 환경에만 익숙한 아이들을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도록 이끌려면 학교에서 가르쳐줘야 하는 게 많다"며 이렇게 말했다.
올해 AI(인공지능)중점학교로 선정된 태릉고는 주변 지역에서 공대로 진학하려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태릉고는 2020년부터 AI융합교육중심학교에 선정돼 왔는데 올해 AI 교육을 강화하는 교육부 정책에 따라 AI 중점학교로 바뀌었다.
AI 중점고에서는 정보 기초 과목인 '정보' 또는 '인공지능 기초'를 학교 필수로 지정하고, 3학년 동안 매 1학기씩 정보 관련 교과가 개설돼야 한다. 정보 교과는 중학교까지 필수지만 고등학교에서 '기술·가정' 교과군으로 묶여 학교에 따라 과목이 개설되지 않을 수 있다. 교육부는 AI 중점학교(초·중·고·특수학교)로 올해 1141개교를 선정했고, 내년에는 1500개교, 2028년에는 2000개교까지 확대한다. 올해 이들 학교에는 특별교부금 총 385억원이 투입된다.
태릉고 1학년은 '정보'와 '인공지능 기초'를 모두 필수로 듣고, 2학년부터 프로그래밍(파이썬), 인공지능 수학, 인공지능과 피지컬컴퓨팅 등을 선택해 들을 수 있다. 대부분이 프로젝트 수업으로 학생들은 실제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데이터 분석을 해본다. 다만 이 과정에서 AI 프로그램은 사용하지 않는다. 노 교사는 "고등학생 때는 어떤 주제로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생각을 키우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그래야 대학에 진학한 뒤에 AI를 '도구'로 쓸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1학년 때는 비밀번호가 맞으면 열리는 도어락 시스템을 만들었다면, 2학년 때는 데이터 분석을 시각화해 본다.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 있는 앱(애플리케이션) 데이터를 분석해 어떤 카테고리의 앱이 가장 많이 설치되는지, 어느 앱이 평점이 가장 높은지, 무료와 유료일 때 어떻게 달리지는 지 등을 분석해 '성공하는 앱의 조건'을 시각화해 보는 식이다.
학생들은 희망 진로에 따라 가공식품의 영양성분을 시각화해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강구해 보거나 우리나라의 반도체 생산과 수출의 변화를 분석해 전망이 좋다고 판단되는 회사를 가상으로 설립해본다. 휴일이나 방학 때는 교내 해커톤, 인공지능캠프 등을 개최하고 학교 축제에서는 AI 연구 동아리가 로봇 축구대회를 운영하기도 한다.
이런 수업 과정은 학교생활기록부의 세특(세부 능력·특기 사항)에 담기다보니 유수 대학 진학률도 크게 높아졌다. 태릉고의 서울 4년제 대학 합격자 수(중복 합격 기준)는 2021학년도 52명에서 2026학년도 132명으로 급증했다. 노 교사는 "세특에 사회적, 일상적 문제를 어떻게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 상세한 기록을 남길 수 있다"며 "대학들은 단순 지식 나열이 아닌 AI를 도구로 쓸 줄 아는 융합적 인재를 원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학생들의 정보 수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수록 교구 및 컴퓨터 시설, 정보 교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한 과목에 학생 50~100명이 신청하면 수업마다 20~30명으로 분반해 진행한다. 태릉고 컴퓨터실은 3곳이지만 기기가 노후된 교실이 있어 올해 AI 중점학교 지원금으로 리모델링을 할 예정이다.
일반 고등학교는 정보교사가 1명인데 반해 태릉고는 3명이지만 그만큼 수업이 많아 수업 및 평가의 업무 부담도 높다. 노 교사는 "파이썬 수업을 듣고 있는 220명을 포함해 총 학생 300명을 담당, 평가 및 세특을 써주고 있다"며 "체계적인 교육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교원 및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태릉고 학생들이 보여준 것처럼, 진로와 연결해 데이터를 분석하고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며 스스로 생각을 키우는 과정이야말로 AI를 도구로 활용할 줄 아는 살아있는 교육"이라며 "AI 교육이 내실있고 효과적으로 이뤄지고 교원이 수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학습 환경 개선에도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