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vs국회, '충돌형 권력구조'…28년 '헌 법'으론 한계
17일은 제67회 제헌절이다. 1987년 '민주화'의 결과로 만들어진 현재의 헌법은 28년이 지나 그동안의 사회변화와 맞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은 '헌 법'이 됐다는 인식이 정치권과 학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를 반영해 한동안 거세게 불던 정치권의 개헌 요구는 잦아진 지 오래다. 박근혜 대통령이 여전히 개헌에 대해 부정적이고, 16일 박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회동에서 당청간 '찹쌀떡' 공조를 강조, 대통령의 뜻을 거슬러가며 여당이 개헌을 추진할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
하지만 5년 단임 대통령제하의 '제왕적 권력'과 강화된 국회의 입법권이 본격적으로 충돌하기 시작하면서 국가 권력구조를 중심으로 한 개헌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오히려 확산되고 있다. 특히 최근 여당 원내대표가 대통령과의 불화로 물러난 '유승민 파동' 과정에서 당청간 갈등, 행정부와 국회의 대립, 여야간 대치 양상이 여실히 드러나면서 개헌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결국 답은 권력구조 개편' 토론회에선 한동한 숨죽였던 개헌 주장이 쏟아져 나왔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대통령과의 불화 속에 교체된 직후여서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강도높게 제기됐다.
대표적인 개헌론자인 이재오 의원은 "국회의원들이 뽑은 원내대표도 정부 수반의 말 한마디로 그만둬야 하는 것도 그동안 70년간 쌓이고 쌓인 제왕적 권력의 횡포"라며 "이것이 사회 모든 부분을 지배하기 때문에 권력구조를 이대로 둬선 안 된다"고 개헌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의원은 지난 4월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파문 당시에도 권력이 한 사람에 집중되는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는 대통령 측근의 부패·비리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꺼져가던 개헌 논의에 불씨를 지폈었다.
원혜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최근 대통령과 여당, 또 정부와 국회의원을 보면서 왜 이렇게밖에 안 될까 고민할 것"이라며 "문제의 해법은 근본적인 데 있다는 인식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야권의 개헌전도사로 불리는 우윤근 새정치연합 의원은 발언 강도를 더 높였다. 우 의원은 "누구 한 사람을 가짜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어 거기에 목매는 것은 나라가 망하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이재오 의원은 지난해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의 권력집중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5개국 중 미국, 영국 다음으로 3위"라고 소개했다.
우리 헌법상 대통령은 국군을 포함해 거대한 공무원 조직을 통솔하고 예산편성권과 법안발의권도 갖고 있다. 검찰을 동원한 사정 등 보이지 않는 힘도 여전히 막강하다.
대통령이 독주할 경우 여당은 대통령의 뜻을 따를수 밖에 없다. 선진국 수준에 올라선 우리 경제의 규모와 갈수록 복잡해지고 다양햐지는 사회 이슈들을 생각하면 리스크가 큰 구조다.
'유승민 파동'의 단초가 된 국회법 개정안의 경우, 대부분의 여당 의원들이 본회의에서 찬성표를 던졌지만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자 당론으로 해당 법안을 폐기하고 원내대표까지 교체해야 했다.
야당과의 관계에서도 국회내 타협의 여지는 줄어들고, 대립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국회선진화법 등으로 과거와 달리 야당 동의없이는 법안을 처리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여당은 야당과 대통령 사이에 낀 신세가 되고, 입법부와 행정부의 구조적 대립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박 대통령처럼 공공한 지지율을 갖고 있고 임기가 반환점을 돌지 않은 상황에선 그나마 '말빨'이 먹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엔 아예 입법과 행정이 따로 놀게 될 수도 있다.
개헌론자들은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선 통치 구조를 중심으로 한 개헌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4년 중임 대통령제를 통해 아예 대통령에 더 힘을 싣든지, 아니면 정책의사결정권을 가진 국회가 실질적으로 내각을 구성하고 국정을 책임질수 있도록 내각책임자로 가든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는 지적이다.
대통령제만 문제인가…'멀티포인트 개헌' 필요
기존의 개헌론은 대부분 권력구조 개편이라는 원포인트에 집중돼 있었다. 때문에 정치인 '그들만의 리그'란 따가운 시선이 적지 않았고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다.
따라서 경제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헌법적 근거 마련, 인권을 포함한 기본권 신장, 지방자치와 분권 확대를 향후 헌법개정 논의에 폭넓게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른바 '멀티포인트' 개헌이다.
국회에 따르면 1987년 후에도 개헌론이 수차례 제기됐지만 대통령 권한을 총리에게 분산하고 내각제에 준할 만큼 의회 기능을 키운다는 권력분산형 개헌 지향이란 사실은 똑같았다. 정치권은 권력구조가 모든 사회문제의 근본 원인이며 여기에 집중하면 논란이 흩어지지 않고 비교적 개정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이 때문에 개헌은 먹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계륵같은 정치쟁점이 되고 말았다. 28년째 그대로인 헌법 조항 곳곳이 바뀐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하는 점이 거듭 지적됐지만 권력분산에만 목소리를 높이다보니 일각에선 개헌을 정치인의 권력욕구 해소방안으로 치부했다. 개헌 반대 측은 번번이 "먹고사는 문제, 경제가 급한데 무슨 개헌이냐"고 맞섰다.
게다가 대선·총선 국면에 접어들면 개헌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다. 개헌론이 반짝 제기되다가 수면아래 가라앉는 일이 반복됐다. 개헌론자 스스로 개헌 동력을 약화시키고 국민적 논의를 제한하는 부작용을 낳은 것이다.
이처럼 정치일정에 구애받지 않고 지속적이고 생산적인 개헌논의가 가능하려면 국민생활과 밀접한 개헌으로 논의의 초점을 옮겨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제 분야에선 경제적 특권층을 인정하지 않는다거나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명시하는 게 거론된다. '땅콩회항'으로 상징되는 갑을관계, 경제·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하자면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하는데 모든 법의 근간이 헌법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장래희망 1순위가 '건물주인'이라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로 지대추구형 경제가 만연한 현실, 저출산 해소와 여성의 사회진출 지원이 우리 경제의 절대과제인 점을 고려해도 획기적인 경제분야 개헌 필요성이 크다.
기본권 개헌도 주목 받는다. 기본권을 갖는 주체를 '국민'에서 보편적 '인간'으로 확대하고 양성평등·표현과 사상의 자유도 현행헌법보다 뚜렷이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권의 개선은 곧 국민생활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정보기본권, 즉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보장도 그 중 하나다.
포털사이트, 카카오톡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검열하거나 심지어 스마트폰을 해킹하는 프로그램의 존재도 논란이다.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는 전통적 조항(제17조)보다는 개인정보 공유범위를 본인이 결정할 수 있게 하는 정보기본권 개념 신설도 필요해 보인다.
헌법 제117-118조가 규정한 지방자치도 화두 중 하나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개헌의 본질은 민생과 민주주의, 지방자치의 발전이고 그렇기 때문에 개헌의 기본방향은 분권이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원포인트' 개헌논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가 반환점을 돈 3년차(2005년)에 야당인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했고 임기 마지막 해인 2007년 1월 대통령 4년 중임제를 골자로 한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18대 국회 김형오 국회의장, 박근혜 정부의 19대 국회 강창희 의장은 각각 의장직속기구를 통해 개헌안을 연구했다. '강창희안'도 직선 대통령이 외교국방, 국회가 뽑는 국무총리가 내무를 맡는 직선제 분권형 대통령제를 제안해 정치구조에 집중했다.
"불씨 살려라"…여야 개헌파, 메아리 없는 외침
여야 중진 의원들을 주축으로 한 국회 개헌파들의 개헌 요구는 19대 국회 출범시부터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임기가 채 1년도 남지 않은 시점까지 본격적인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는 '메아리 없는 외침'에 그치고 있다.
정치권의 개헌 논의는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개헌모임)'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 모임에는 여야 가릴 것 없이 '권력구조 개편'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155명의 의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개헌모임은 지난 2012년 11월 '분권형 개헌 추진 국회의원 모임'으로 시작했다. 당시 발기인은 새누리당 의원 14명과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21명 등 총 35명이었다. 새누리당에서는 이재오·정갑윤 의원이, 민주당에서는 우윤근·이낙연·유인태 의원이 주축이 됐다. 이듬해 2월 개헌모임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운영위원 30명(간사 이군현·우윤근)을 임명했다. 발기인이었던 이재오·원혜영·유인태 의원은 고문을 맡았다.
개헌모임은 지난해 11월 소속 의원 35명이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구성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또 지난해 말 시민사회단체 등과 '개헌추진국민연대'를 발족시키기도 했다.
개헌에 대한 공감대는 여야를 떠나 정치권 전반에 폭넓게 형성돼 있다는 게 개헌모임의 입장이다. 실제 새누리당에서는 '개헌 전도사'를 자처하는 이재오 의원을 포함한 비박(비박근혜)계 의원들이 적극적이고, 새정치연합에서는 반대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쉽지 않지만 그 중에서도 우윤근 전 원내대표가 대표적인 '개헌주의자'로 통한다.
이들은 굵직한 이슈가 있을 때마다 개헌 논의에 불을 지피고 있다. 특히 지난 4월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파문 당시 이재오 의원은 권력이 한 사람에 집중되는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는 대통령 측근의 부패·비리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꺼져가던 개헌 논의에 불씨를 지폈었다.
가깝게는 유승민 전 원내대표 사퇴 사태 때도 개헌을 강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이 의원을 비롯해 새정치연합 우윤근·신기남 의원 등은 유 전 대표의 사퇴가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비롯됐다며 구체적 시기까지 거론하며 개헌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의원은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결국 답은 권력구조 개편' 토론회에서 "내년 총선에 완성된 개헌에 의해서 2017년 대선을 치러야 한다"며 "(대통령이)권력이 중심이 된 건 6공화국·박근혜정부로 끝내고 7공화국부터는 제왕적 권력이 인간에 재앙을 가져다주는 형태는 안 된다. 늦어도 내년 총선까지는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윤근 의원도 "개헌을 안 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생각한다"며 "올해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밝혔다.
개헌모임은 소속 의원이 여야 합쳐 155명이 되는 만큼, 개헌특위 구성이 지체될 경우 직접 개헌안을 만들어 발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대통령뿐 아니라 국회도 재적의원 과반수로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헌파들의 노력에도 국회 차원의 개헌 움직임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지난해 10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이른바 '개헌 봇물' 발언 해프닝과 '개헌은 블랙홀'이란 개헌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부정적 입장 발표 이후 개헌 논의는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다.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이 국회 차원의 개헌 논의에 난색을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자 19대 국회 내 개헌 논의는 이미 물 건너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개헌 논의가 무르익고, 공론화를 통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정기국회가 시작되고 국정감사와 예산 심사를 끝내면 사실상 20대 총선 모드가 되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19대 국회 내 개헌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음은 개헌모임 소속 국회의원 명단>
◇새누리당(56명)
이군현(간사) 강기윤 강석호 권성동 김동완 김성찬 김영우 김용태 김을동 김장실 김재경 김정훈 김제식 김종훈 김태호 김학용 김한표 김회선 나성린 박덕흠 박명재 박민식 박상은 배덕광 신동우 신성범 신의진 심재철 안덕수 안효대 여상규 염동열 원유철 윤명희 이명수 이병석 이에리사 이이재 이인제 이장우 이재오 이주영 이한구 정갑윤 정병국 정우택 조명철 조해진 주영순 주호영 진영 최봉홍 하태경 홍문표 홍일표 황진하
◇새정치민주연합(96명)
우윤근(간사) 강기정 강창일 권은희 김경협 김관영 김광진 김기식 김기준 김동철 김민기 김성곤 김성주 김승남 김영록 김영주 김영환 김용익 김윤덕 김재윤 김춘진 김현 노영민 노웅래 문병호 문희상 민병두 민홍철 박남춘 박민수 박범계 박병석 박수현 박영선 박완주 박지원 박혜자 배재정 백군기 백재현 변재일 부좌현 설훈 신경민 신기남 신정훈 신학용 심재권 안민석 양승조 오영식 오제세 원혜영 유대운 유성엽 유인태 윤관석 윤호중 윤후덕 이목희 이미경 이상민 이상직 이석현 이언주 이원욱 이윤석 이종걸 이찬열 이춘석 이학영 인재근 임내현 임수경 장병완 전병헌 전순옥 전정희 전해철 정성호 정호준 조경태 조정식 주승용 진선미 최규성 최동익 최민희 최원식 최재성 추미애 한명숙 한정애 홍영표 홍의락 황주홍
◇정의당(2명)
서기호 김제남
◇무소속(1명)
정의화
역대 대통령들 "그놈의 헌법"…'화씨벽'이 된 개헌
우리나라 개헌의 역사를 돌아보면 국민들이 헌법개정을 권력자들의 '오래 해먹기' 수단 쯤으로 간주하는 것도 당연하다.
1950년대~1970년대 국회 취재 기자를 역임하고 11대와 15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진배 전 의원은 "세 사람의 대통령들이 자기가 손수 만든 헌법으로 오래 해 먹기 어렵거나 불편을 느끼자 '그놈의 헌법'이라며 헌신짝처럼 버리고 헌법 같지 않은 이름만의 헌법을 흉기처럼 휘둘렀다"고 우리나라 개헌 역사의 어두운 단면을 이 같이 표현했다. ‘그놈의 헌법’이란 말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세 대통령들이 헌법을 개정하면서 한 말이다.
총 9차례 개헌 중 최고지도자 선출 방식과 관련 없는 내용으로 개헌이 이뤄진 것은 1960년 11월의 4차 개헌이 유일하다. 3·15 부정선거 관련자와 부정축재자들을 소급해 처벌할 수 있도록 한 헌법 개정이다.
나머지 8차례는 모두 권력구조 개편에 관한 내용으로 개헌이 단행됐으며 특히 정권 연장과 독재를 꾀하기 위해 헌법이 고쳐진 경우도 여러 차례다.
'발췌개헌'으로 불리는 1차 개헌부터 헌법을 권력자의 입맛에 맞게 수정하는 불행한 역사가 시작됐다. 1차 개헌은 대통령 선출을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꾸는 것을 골자로 한다. 표면적으로는 국민들이 대통령을 직접 뽑게 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국회의원들의 투표로 대통령을 뽑는 간선제로는 정권 연장에 성공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것이 개헌의 배경이다.
이 대통령은 이 개헌으로 1952년 8월 실시된 첫 직선제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정권 보위에 개헌을 톡톡히 활용한 이 대통령은 1954년에는 '사사오입 개헌'으로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을 폐지하고 1956년 세 번째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1960년 4·19혁명으로 대통령 중심제에서 내각책임제로 돌리는 개헌이 이뤄졌지만 다음해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다시 대통령 중심제로 복귀하도록 헌법을 개정했다.
이후 6차개헌(3선개헌)과 7차개헌(유신개헌)을 통해 대통령 권력을 대폭 강화하고 영구 집권을 시도했다. 이 같이 헌법 가치가 권력자의 손에 유린당하며 난도질 당하는 과정에서 헌법을 고치는 권한을 가진 국회는 견제 세력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입법부의 권한을 권력자의 구미에 맞추기 위한 '딸랑이'로 사용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신군부 세력이 주도한 8차 개헌이 전두환정권을 탄생시킨 후 1987년 드디어 국민의 손으로 직선제 개헌(9차개헌)을 쟁취해냈다. 그러나 이 개헌 동력을 절차적 민주주의 뿐 아니라 실질적인 민주주의 가치 실현으로 이어가는 데는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직선제 개헌 후 3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 10차 개헌의 필요성은 그동안 무수히 제기돼 왔다. 그럼에도 개헌이 논의로만 그친 데에는 헌법 개정 주체인 의회, 즉 우리 국회의 신뢰성과 대표성이 현저하게 낮기 때문으로 지적된다. 독립된 입법부로 기능하지 못하고 대통령과 행정부에 종속돼 사실상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는 한 국민들이 국회에 헌법을 고치는 역할을 부여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1952년 발췌개헌이 이뤄진 무렵 국회에서 의원내각제 개헌안 설명에 나서면서 이종형 국회의원은 개헌을 '화씨벽(和氏壁)'의 고사에 비유했다.
"화씨벽이 옥을 임금에게 바치니 임금이 거짓말을 한다고 오른 발꿈치를 끊어버렸고 그 다음 임금은 보석의 가치를 알아주겠거니 또 바쳤더니 이번엔 왼쪽 발꿈치를 끊어버렸다. 이것을 내놓긴 내놓아야하는데 나중에는 끊을 발꿈치가 없다. 개헌안은 화씨벽이다. 정부와 국회가 서로 손을 쥐고 과거 정치 의견의 차이는 차이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작은 선입관이나 정권욕으로 (개헌을 반대하는) 국회의원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모가지를 끊어야 할 것이다."
모든 공은 헌법재판소로…'휘어진 잣대' 불신 씻어야
헌법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헌법재판소는 개헌을 통해 탄생과 폐지라는 부침을 겪었다. 대한민국 헌법에 헌법재판소에 관한 조항이 신설되고 정당 해산에 관한 권한이 부여된 것은 4·19혁명 직후에 이루어진 개헌을 통해서였다.
5·16 이후인 1963년에 다시 개헌이 이뤄지면서 사라졌다가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의 산물로 다시 태동, 1988년 1기 헌재((1988~94년 조규광 소장)가 출범했다. 2000년대 들어 국가적 현안들이 헌재로 향하면서 공정성 논란은 본격화 된다.
헌재의 권한과 위상이 막강해지면서 정치적 현안이 헌재 결정에 좌우되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국회법 개정안 위헌 논란에 휩싸였던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은 원내대표에 선출된 지 5개월여 만에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다수당의 일방적 국회운영을 방지한다며 2012년 여야가 합의해 도입한 국회선진화법은 헌재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새누리당이 "국회의장 직권상정 금지조항 등이 국회의원의 법률안 심의·의결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지난 1월 국회의장을 상대로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기 때문이다.
정치 지형을 좌우하는 선거구 획정문제는 헌재의 결정으로 개정작업이 진행 중이다. 헌재는 지난해 10월 국회의원 지역 선거구를 획정한 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선거구별 인구 편차를 현행 3대1에서 2대1 이하로 바꾸라는 입법 기준을 제시했다.
이밖에 성매매특별법, 양심적 병역거부 등 우리 사회 핵심이슈들이 줄줄이 헌재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헌재가 국가 현안에 대한 최종 판단기구로 작동하면서 재판관의 이념성향에 따라 국가 중대사가 결정되는 구조가 심화되는 상황이다.
2013년 출범한 지금의 5기 헌재(박한철 소장)에 대해서는 '보수 색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지난해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서 8대 1이라는 일방적 결과가 나오자 야권에선 재판관 구성의 편향성 문제를 제기했다.
야권은 '종북주의'와는 선을 그었지만 '8대 1'이라는 일방적인 결과가 다른 정치 사안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보수정권이 연이어 집권하면서 헌재가 시대정신, 민주주의의 다양성을 대표하는데 한계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헌재 보수화의 결정적 이유로 법조인 출신으로만 구성된 태생적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 헌법재판관은 대법관과 마찬가지로 '법조 경력 15년 이상, 40세 이상의 변호사 자격을 가진 자'라는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시민단체나 학계 등 다양한 시각과 배경을 가진 인사들의 헌재 진출이 요원한 상황인데 검사와 판사 출신 일색으로 구성되면서 기득권의 이익과 이념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헌재 재판관의 선출 방식도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금의 방식은 국회·대법원장·대통령이 각각 3명을 앉히도록 해 '3권'의 형식적 균형을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대통령 본인이 3명을 자유롭게 임명할 수 있는데 반해 국회는 여야 각 1명, 여야합의 1명을 선출하도록 돼 있다.
9명 중 4명은 집권세력이 마음에 드는 인물을 고를 수 있는 셈.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임명하는 현실에서 대법원장 몫 3인의 지명 역시 이념과 성향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구조다. 이 때문에 정치권과 법조계 일각에선 '헌재의 역할은 필요하지만 재판관 구성의 개정작업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