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역사에서 배태된 문제로 그것의 한계만 지적한다고 오늘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의 당면한 문제는 지금 바로 잡아야만 보다 나은 내일로 나아갈 수 있다. 오늘의 과제와 책임, 이와 함께 자유주의의 기본적인 성격도 깊이 살펴봐야 한다.
먼저 문제의 본질을 살펴보고 옳고 그름도 따져본 후 좋은 것은 그대로 지속시키되 더 좋은 것을 이룩하기 위해 개혁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자유주의의 접근이다. 상대방의 논리를 배격하거나 적대적으로 임하는 ‘패거리’식의 주장이나 결정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자유주의적 접근은 적대적 대결이 아니라 상대방을 인정하고 옳고 그름을 함께 판단하면서 연대하는 것이어야 한다.
자유주의는 감성이 아니라 이성에 바탕을 둔 개혁의 사상이다. 이성적 개혁은 사건이나 사물의 인과관계를 깊이 살펴보고 옳고 그름을 밝혀내는 객관적이고도 성찰적인 접근을 의미한다.
자유주의의 문제 해결 방식은 혁명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다. 비록 혁명적일 정도로 철저한 변혁을 추구해도 그 과정에서는 동의와 합의에 따른 개혁을 기반한다. 개혁을 위한 합리적인 과정을 중시한다. 합리적이라는 말은 이성적으로 균형 있게 문제를 인식한다는 뜻이다. 합리적인 개혁만이 문제에 대한 자유주의자의 접근양식이다.
합리적인 개혁은 주장하는 사람의 목소리 크기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고, 소수에 대한 다수의 뜻으로만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억지로 밀어붙이는 식으로 해결될 일도 아니다. 모두가 수용하고, 비록 내 마음에 맞지 않더라도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 이것이 합리적인 개혁의 길이다.
이를 위해서는 내 삶의 자세가 기본적으로 자유주의라야 한다. 자유주의로 산다는 것은 첫째, 비교성찰적인 관점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둘째, 자신의 잘못된 한계점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셋째, 이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려고 해야 한다. 넷째, 자기가 한 일과 주장에 대한 결과를 책임지는 자세를 가져야한다. 이념은 이념으로 주장하고 생활은 생활로만 하는 양분된 현상이 아니라, 이념과 생활의 일체화를 이루는 것이다.
특정 주장만을 내세우기보다도 실천을 더 중시하고, 나의 주장에 오류가 발견됐을 때는 과감하게 그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의지, 이것 역시 자유주의자의 길이다.
자유주의자의 길은 그렇게 쉬운 길만은 아니다. 우리는 주위에서 평소 자신의 주장과는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들에게 이데올로기나 이념은 자기변명일 뿐이다. 위선과 거짓으로 가득 찬 그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는 ‘낡아빠진 깃발’이다. 이념이 깃발로 남아있는 한 올바른 세상의 방향은 기대할 수 없다.
자유주의는 삶의 중요한 실천이요, 생활의 푯대다. 더 이상 어떤 것도 이데올로기로 나를 구속할 수는 없다. 자유주의, 리버럴리즘만이 나를 지켜내고 올바른 길로 가게 하는 마음속의 좌표라고 믿고 있다.
자유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 꼭 봐야 할 책 중의 하나는 미국 ‘연방주의자 논집(Federalist Papers)'이다. 이 책은 미국 건국의 사상사적 토대를 닦았던 세 사람의 연방주의자,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 1755-1804), 제임스 메디슨(James Madison, 1751-1836) 그리고 존 제이(John Jay, 1745-1829)에 의해서 쓰여진 85편의 논문들을 엮은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미국 건국의 사상사적 토대를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에 오늘날 미국 헌법을 해석하는데 가장 중요한 고전으로 꼽힌다.
이 논문들은 미국 헌법을 처음 만들었을 때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뉴욕 주민들에게 헌법의 정신과 취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필명으로 발간됐다. 이들의 주장 속에는 새로운 시대 문명을 보다 발전적으로 이룩할 수 있는 길이 자유주의 사상, 즉 ‘리버럴리즘’이라는 확신이 들어있다. 당시 자유주의는 그만큼 중요한 사상이었다.
그 때 그들이 내세웠던 핵심 사상은 개인의 선택을 절대적으로 중시하되 그 선택이 다른 사람의 존재나 이익에 위해를 끼치지 않는 한 그들의 이익과 권리는 철저하게 보장돼야 한다는 신념이었다. 그리고 세상은 항상 변한다는 것, 변화된 세상에 적절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다짐과 합리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 등은 지금도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미국 헌법의 기본 정신은 견제와 균형, 즉 삼권분립이다. 미국 4대 대통령이 된 제임스 메디슨은 미국 헌법의 초안을 작성해서 ‘헌법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제임스 메디슨이 쓴 연방주의자 논집 제51편은 삼권분립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한 부문에 여러 권력들이 집중되는 것을 방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각 부문을 관장하는 수반들에게 다른 부문의 권리침해를 저지할 수 있는 필수적인 헌법적 수단과 개인적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 정부의 권력남용을 억제하기 위해 이러한 제도적 장치들이 필요한 것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연방주의자 논집’을 읽어보면 미국의 삼권분립 정신은 의회의 독주를 견제하려는 고민이 엿보인다. 대통령의 독재를 견제해야 하는 우리의 입장과는 다른 점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이 믿는 이상이나 신념에도 많은 오류와 한계를 갖고 있음을 전제해야 한다. 그 때문에 자기와 다른 의견과 주장도 얼마든지 경쟁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고 이해돼야 한다는 생각이야말로 자유주의자의 기본 덕목이다. 자유주의자는 어느 경우에나 자신만이 제일이고, 자신만이 선택받았고, 자기만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헛된 과신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그것은 진정한 자유주의자일 수가 없다.
제임스 메디슨이 한 다음과 같은 말은 민주주의의 핵심을 찌르고 있다.
“인간의 이성은 오류로 떨어질 수 있고 그러한 행동도 얼마든지 저질러질 수도 있기 때문에, 자신과 다른 의견도 얼마든지 용납돼야 하고 또한 수용돼야 한다.”
진정한 리버럴리스트로 살아가는 모습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 소극적이고 연약해 보일 때도 있고 고집쟁이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래도 미래와 시대는 자유주의를 필요로 한다. 자유주의의 원칙에 충실하면서 시대와 상황의 변화를 읽을 줄 알고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불변의 금언을 가슴에 간직하고 나를 지켜주는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 자유주의는 그것을 위해 내세운 깃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