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주의자 논집(The Federalist Papers)'은 1787년 9월 17일 필라델피아 연방 회의에서 미합중국 헌법 초안이 완성된 후 '미국 헌법의 아버지'들이 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발표한 85편의 글을 묶은 것이다. 그해 10월 알렉산더 해밀턴이 1호 논문을 뉴욕의 언론에 실었으며 이후 제임스 메디슨과 존 제이가 동참, 그 다음해 8월까지 장장 10개월 간 매주 미국 헌법이 담고있는 정신과 철학을 설명하는 글이 이어졌다.
연방주의자 논집은 미국 헌법의 해석서로 자리매김했지만 애초에 연방헌법에 반대하는 '반(反)연방주의자(anti-federalist)'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도출된 결과물이었다.
연방헌법 비준에 가장 강력하게 반대한 뉴욕주에서 '카토'와 '브루투스'란 필명으로 헌법비준에 반대하는 기사가 신문에 실린 것이 발단이 됐다. 로마 공화정 말기 공화정의 수호자로 자처한 이들의 이름을 빌어 연방헌법이 공화주의에 어긋난다고 공격한 것이다.
이에 맞서 해밀턴과 메디슨, 제이는 '푸블리우스'란 필명으로 헌법초안을 옹호하는 글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필명은 로마 공화정 창립멤버인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포플리콜라'에서 따왔다. 연방헌법이 새로운 공화정의 기초를 다진다는 주장을 필명에서부터 역설한 셈이다.
총 85편 중 해필턴이 51편을, 메디슨과 제이가 각각 29편과 5편을 썼다. 이 중 메디슨이 쓴 제10호와 제51호는 연방주의의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정수로 평가된다. 10호에서는 공동체의 이익에 반하는 분파의 폐해를 줄이는 데 연방국 형태가 유리하다는 논지를 설파하며 51호에서는 정부의 각 부문 간 견제와 균형을 위한 삼권분립 원칙의 정당성을 보여준다.
이들의 주장 기저에는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아무리 뛰어난 개인이라도 오류를 저지를 수 있으며 따라서 다양한 의견과 주장이 자유롭게 받아들여져 합리적인 결정을 도출할 수 있도록 국가가 제도를 갖춰야 한다는 사상을 담고 있다.
미국 헌법이 초안부터 각 주로부터 비준을 받아 발효되는 과정 또한 이러한 사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메디슨의 '버지니아 안'부터 윌리엄 패터슨의 '뉴저지 안', 로저 셔먼의 '코네티컷 안' 등 다양하게 제안된 안들이 헌법초안에 반영됐으며 이를 두고 찬성과 반대 주장이 격렬하게 부딪히는 과정에서 '권리장전(Bill of Rights)'이라 불리는 수정 조항을 수용한 것이 그렇다.
미국 헌법은 '자유주의'가 국가 단위에서 구현되는 원리를 정립해냈다는 데 의의가 있을 뿐 아니라 그 논의 과정에서 미국의 정치 제도가 지향해야 할 핵심 가치를 도출하고 이를 구성원들이 공유해 나갔다는 데 보다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치지 못한 채 헌법을 만든 우리나라로선 부러운 대목이기도 하다. 1948년 한달 반이란 짧은 기간 동안 '몰아치기'로 만들어진 우리 헌법에서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등 권력구조는 물론 해방 후 불거진 각종 의제들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과 주장들이 수용되기 어려웠다. 9차례에 걸친 헌법 개정 과정에서도 그 부작용은 이어져 오늘날까지 개헌이 정치권의 과제로 대두되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19대 국회 들어 개헌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가 분출되는가 싶었으나 어느새 그 자취조차 찾아보기 힘든 상태다. 개헌의 방향과 내용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개헌에 대한 논의 자체를 열어놓는 것, 그것이 연방주의자 논집이 주는 살아있는 교훈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