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이원집정부제를 주장하는 의도는 사악하거나 멍청하거나 둘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외치는 대통령이, 내치는 총리가 각각 나눠 맡는 이원집정부제 구조는 일반적으로 분권형 권력구조 형태의 대표격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으로 일치단결을 외치던 친박(친박근혜)계에서 이원집정부제 주장이 제기되자 장기집권의 불순한 의도로 탈바꿈한다. 이원집정부제가 권력을 나누기는 커녕 특정 정치 집단의 권력을 보장해주는 수단이 되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원집정부제가 권력의 집중화를 막고 집권당이 아닌 야당에게도 권력을 나눠줄 것이란 기대는 멍청하다. 우리나라 지정학적 상황과 정치적 지형에서 외치와 내치를 나누는 것은 오히려 대통령에 대한 의회의 견제 기능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가장 피보는 것은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일 것이다.
지난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언급해 정치권에 파장이 일었을 때다. 정치권 사정에 밝은 한 전략가는 "오스트리아는 영세중립국이다"는 한 마디로 가능성을 일축했다. 오스트리아의 이원집정부제는 외치를 담당하는 대통령의 권한이 미미하고 의회의 총리에 힘이 쏠린 형태다. 이는 오스트리아가 유럽 평화를 위한 완충국으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고 국가의 독립과 안전을 보장받았기에 가능하다.
분단국가이자 4대 열강의 각축전이 벌어지는 우리나라와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외치로 분류되는 외교와 국방이 국정 운영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의미를 비교하기 어렵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놓고 국회에서 벌어지는 논쟁이나 일본과의 외교관계가 국내 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보라.
더구나 안보는 분단국가인 우리나라 정당들의 정체성을 가르는 가장 결정적 요인이다. '종북'에 '좌빨'이 자동완성되는 현실을 극복하지 않는 이상 이원집정부제는 외치와 내치의 갈등이 충돌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대통령과 총리 모두 보수정당에 몰아주기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친박(친박근혜)계에서 '간'보기 시작한 '반기문 대통령+친박계 총리' 시나리오는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이란 숟가락을 얹어 한 발 더 나아간다. 새누리당 내에서 유일하게 계파 보스의 지위를 갖고 있는 박 대통령의 영향력을 다음 정권까지 이용할 수 있다는 셈법이 재빨리 작동한다. 내년 총선에서 '진박(진짜 박근혜 혹은 '진실한 사람들') 물갈이'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 있다.
친박계 핵심 중 핵심으로 꼽히는 한 새누리당 의원이 이원집정부제 운영의 밑그림을 살짝 드러내줬다.
그는 "지금 이원집정부제를 하고 있다고 해보자. 박근혜 대통령에 김무성 총리일 거 아니냐. 나라 꼴이 잘 되겠다. 그래도 그건 괜찮다. 여소야대가 되면 박근혜 대통령에 문재인 총리인데 나라 꼴이 잘 되겠다"고 꼬집었다.
이원집정부제로 '나라 꼴이 잘 되려면' 야당 총리는 커녕 새누리당 비주류 총리도 안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친박 성골로 꼽히는 최경환, 윤상현, 김재원 의원이면 모를까.
불순함을 넘어 발칙해보이기까지 한 '친박계 개헌론'이 허무맹랑하게만 들리지 않는 것은 어떤 이념적 가치나 정책적 대안을 보여주지 못하는 정치권 때문이다. 계파 보스를 내세워 권력을 연장하려는 시도는 일본의 파벌정치와 같은 방식의 권력투쟁으로 정치를 변질시킬 가능성이 있다. 이 과정에서 집권당은 정권교체를 최대한 막기 위해 보수단합을 외치고 경직된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외연 확대에 실패한 야당은 군소정당으로 전락한다.
일본의 '자민당(자유민주당) 일당우위 체제'가 형성된 과정이 그렇다. 평화헌법과 미일안보조약 등 안보 이슈를 중심으로 한 '보혁구도'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외형상으로는 자민당과 사회당을 축으로 양당제 체제였지만 사회당 의석수가 자민당의 절반에 불과한 '1과 2분의 1 정당제'에 머물렀다.
1994년 중대선거구제에서 소선거구제로 전환해 민주당이 자민당을 앞서 정권교체를 이뤄내기도 했지만 아주 짧은 기간에 그치고 자민당의 독주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지경이 됐다. 대안 세력의 부재가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낳은 '정치 디스토피아'의 미래다.
더욱 절망스러운 것은 아무리 훌륭한 제도라도 그 제도를 운용하는 사람이 불순한 의도로 이를 악용하면 분권형 권력구조가 특정 계파의 정권연장 수단으로 둔갑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바르게 정치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어서일까. 민주주의의 '혼'을 갖추지 못한 정치인에게 민주주의 제도가 무슨 소용이냐는 자괴감이 드는 요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