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재벌 총수들이 한 자리에 증인으로 출석한 유례없는 대형 청문회에서 '한 방'을 노리는 의원들의 질의가 매섭게 이어졌다. 전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생중계 현장인 만큼 '청문회스타'를 향한 의욕도 넘쳤다.
6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특위)에서는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이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을 향한 일갈로 눈길을 끌었다.
하 의원은 "1988년 5공 청문회 때 나온 사람들의 자제분이 6명이나 있다"며 "그 정경유착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 자식들에게까지 그 고리를 세습할 수는 없다. 끊어내야 한다. 그 매개물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해체 말이 오늘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부회장을 향해 "전경련 해체에 앞장서겠다고 왜 말을 못하나"라며 "국민들이 당신이라면 뭔가 다를 것이다, 구시대 경제인과는 다를 것이라는 희망을 보고싶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순실사태에 새누리당도 공범이다. 제가 새누리당 해체에 앞장설 테니 이 부회장은 전경련 해체에 앞장서자. 우리가 실패할 수 는 있지만 젊은 세대가 구시대 정경유착 잔재를 청산하고 새 경제를 만들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하 의원의 집요한 '우격다짐'에 이 부회장은 전경련에 기부금을 내지 않겠다는 답변을 거쳐 결국 전경련에서 탈퇴하겠다는 약속까지 내놨다. 같은당 이종구 새누리당 의원도 이 부회장을 몰아세워 삼성 미래전략실을 해체하는 방안을 검토해보겠다는 답변을 얻어내는 성과를 올렸다.
전날 이선우 청와대 의무실장을 상대로 박 대통령에게 태반·백옥·감초주사 등을 처방했다는 시인을 받아내며 '핫'하게 떠오른 장제원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도 질의 첫 순번으로 나서 '한화가 2014년 네덜란드에서 말 2필을 구입하고, 승마협회를 통해 정유라씨에게 제공됐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장 의원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게 "한화갤러리아 명의로 2014년 네덜란드에서 8억3000만원에 말 두 필 구입한 거 어디 있느냐"고 묻자 김 회장은 "저희 승마장에서 쓰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장 의원은 "의원실에 보고한 자료에는 2014년에 말 한 필도 구입 안했다고 했는데 잘못된 자료냐"고 추궁했고 결국 김 회장은 "잘 모르겠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날 청문회의 백미로는 김경진 국민의당 간사와 손경식 CJ그룹 회장의 문답이 꼽힌다.
손 회장은 2013년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의 연락을 묻는 김 의원의 질문에 "좀 만나자고 해서 직접 만났다. 조 수석의 얘기는, 저희 그룹 이미경 부회장이 자리를 비켜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조 수석 말은 대통령 말씀이라고 전했다"고 대답했다. 청와대의 CJ그룹 인사개입설을 적극 뒷받침하는 증언이다.
김 의원은 "대통령이 특정 기업의 간부직원으로 하여금 손을 떼고 물러나라는 것은 헌법상 자유민주적 시장경제 질서에 반하는 중대한 행위"라며 "그런 대통령이 공직수행 자격이 있다고 보느냐"고 질문했다. 손 회장은 "과거에도 군부정권 때나 이런 경우가 있었던 기억이 있다"며 "흔한 일이 아닌 것은 잘 안다"고 '돌직구' 답변을 내놨다.
또 박근혜 대통령 독대 여부를 묻는 질문에도 "두 번 했다. 청와대 안가에서 했다. 일 대 일로 만날 때도 있고 배석을 할 때도 있다", "정부가 문화산업을 중요 정책으로 정하고 CJ도 문화사업을 많이 하니 열심히 하라는 격려를 했다"는 등 생생한 기억력을 뽐냈다.'잘 모르겠다',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한 여타 재벌총수들과 달리 크고 명료한 목소리로 답변에 임해 호평도 쏟아졌다.
한편 일부 여야 의원들은 적절치 못한 질의 태도로 빈축을 사기도 했다. 야당 의원들이 특유의 윽박지르는 태도로 증인들에게 호통으로 일관하며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면 여당에서는 기업 총수들을 향해 '고용창출을 위해 힘써주시겠나' 등의 질의 아닌 질의가 나왔다.
특히 이완영 새누리당 국조특위 간사는 김성태 위원장에게 일부 재벌총수들의 건강을 염려하는 듯한 쪽지를 건넨 데 이어 의사진행 발언으로도 이를 되풀이하며 야당 의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안민석 더불어 민주당 의원은 김성태 위원장으로부터 "인신공격, 면박주기 등은 지양해달라"는 면박을 듣고 의사진행 발언 제한 등에 대해 입씨름을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