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러시아의 군사 도발은 한미일 안보 협력의 틀을 허물려는 시도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문제는 '한국 때리기'로 한일 갈등과 3국 공조 약화의 단초를 제공한 일본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23일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영공 침범과 한국군의 경고 사격에 대해 자국 영토에서의 군사행동이라며 한국과 러시아에 각각 항의하는 궤변을 이어갔다. 자위대가 대응 차원에서 긴급발진까지 실시했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따른 과거사 갈등에 편승해 독도 영유권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수출규제 등의 경제보복 조치와 한국의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배제 추진에 이어 독도 도발까지 감행하면서 한일 관계와 한미일 협력 약화를 자초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일 관계의 가장 큰 화약고는 ‘화이트리스트’ 문제다. 일본은 전략물자를 수출할 때 통관절차에 대한 간소화 혜택을 주기 위해 안보상 우호국가 리스트에 올린 27개국 중에서 한국을 제외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빼기 위한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지난 1일 고시한 데 이어 24일 의견수렴을 마감했다. 조만간 각의(국무회의)를 열어 확정·공포하면 3주 뒤부터 시행된다. 다음달 중하순이 시행 시점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화이트리스트 제외 방침이 부당하다며 즉각적인 철회를 촉구하는 내용의 의견서를 이날 일본에 보냈다. 그럼에도 일본은 요지부동이다. 의견수렴 결과 찬성 의견이 압도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가 현실화하면 수출규제로 촉발한 한일 갈등은 중·러의 의도대로 한미일 안보협력 문제로 확전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 정부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문제를 꺼내들 가능성이 있다.
GSOMIA는 협정 당사국이 2급 이하 군사기밀을 공유하는 것으로 1945년 광복 이후 한일이 맺은 첫 군사협정이다. 2016년 11월 발효돼 해마다 연장돼 왔으며, 다음달 24일이 내년도 협정 연장 여부를 결정하는 시한이다. 미국이 한일 갈등의 '레드라인'으로 삼을 만큼 민감한 문제다.
한미·미일 동맹의 양대 축을 기반으로 한미일 3각 안보 협력을 이어주는 끈이어서다. GSOMIA는 중국의 패권 도전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도 직결된 문제다. 우리 정부가 협정 파기 카드를 쉽사리 꺼내기 어려운 이슈다.
청와대 고위 당국자들이 잇따라 내놓은 GSOMIA 재검토 언급도 미국의 중재 역할을 요구하는 전략적 카드 성격이 강하다. 방한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을 만나 GSOMIA 파기를 우려하는 메시지를 전달했을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