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여 전인 2018년 12월19일. 박형철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이 춘추관 마이크를 잡는다.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이던 김태우씨의 폭로에 따른 해명이다. 청와대가 민간인 정보를 수집했다는 주장, 파장이 컸다. 문재인 정부 출범후 처음 겪는 청와대 내부고발이었다.
박 비서관은 비위 의혹이 있는 사람의 일방적 주장으로 일축했다. 해명도 논리정연했다. 하지만 동료에 대한 배신감, 잘못한 게 없다는 결백함은 검사 시절 '면도날'로 불릴 만큼 냉철하던 박 비서관을 울컥하게 했다.
그는 "저는 문재인정부 첫 반부패 비서관으로 명예를 걸고 법과 원칙에 따라 업무를 수행해 왔다"고 한 뒤 말을 멈췄다.
기자가 고개를 들어보니 박 비서관은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그는 심호흡을 하고서야 말을 마쳤다. 권혁기 당시 춘추관장은 박 비서관에게 "물 한 잔 하시고, 문답을 할까요"라며 분위기를 수습했다.
1년후인 지난 4일, 청와대 다른 관계자는 비슷한 사안으로 춘추관을 찾았다. 이른바 '김기현 하명수사 의혹' 때문이다. 청와대가 김기현 전 울산시장 관련 첩보를 경찰에 주고 수사하게 했다는 주장이 핵심이다.
서울동부지검의 한 수사관은 지난해 민정비서관실 특별감찰반원으로 일할 때 울산을 찾았다. 이 방문이 '김기현 첩보'를 위한 것이었단 의심을 받았다. 4일 브리핑은 이에 해명하는 자리였다. 이 수사관이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뒤다.
청와대는 해당 문건 작성자를 찾았다고 했다. 따라서 고인은 무관하다는 게 드러났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걸 빨리 찾아 빨리 정리했으면, 고인이 저렇게까진 안됐을 건데, 그래서…"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허탈함, 안타까움, 미안함이 겹쳐진 표정이었다.
두 사안엔 공통점이 있다. 민정 라인에서 벌어진 일로, 이 분야의 일처리가 철저했는지 의심하게 한다. 1년 전 김태우 사건도 최근 논란도 민정라인은 명확한 '기록'보다 불완전한 '기억'에 의존한다.
김태우가 "민간인 사찰"이라고 주장하자 박 비서관은 '기억'으로 반박했다. 그는 자신과 이인걸 당시 특감반장이 기억하는 한 그 문서들이 언제, 어떻게 생산되고 어디까지 보고됐다고 설명했다.
청와대가 '김기현 첩보'의 경위를 밝힌 근거도 기억이다. 문서 자체는 서류더미 가운데 겨우 찾았다. 작성자는 당장 확인되지 않았다.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도 기억하지 못했다. 근무자들에 대해 일일이 확인하던 중 A 행정관이 "내가 작성한 것 같다"고 기억해냈다.
청와대가 이 과정을 굳이 공개한 이유는 있다. 담당자들이 기억 못할 정도로 일상적 사안이니 선거 개입은 말이 안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다른 곳도 아니고 민정 분야에서 연거푸 구멍이 생긴 건 '선의'나 '결백'으로 충분치 않다. 첩보 문서는 일반 공문서와 달리 기밀성이 중요하다고 쳐도 마찬가지다.
복수의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청와대는 무엇보다 고인이 된 수사관과 '김기현 사건'이 무관한 걸 증명하고자 애썼다. 억측으로 명예가 훼손되는 건 함께 일했던 동료로서 견딜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따라서 '제보자가 누구냐'의 이슈로 확전되는 건 원치 않았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6일 페이스북에 "고인을 직접 알지 못한다"면서도 "대변인이 아닌 청와대 동료 고민정으로서 꼭 전하고 싶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썼다.
그 심정은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프로페셔널'이라는 잣대를 들이민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업무공간이며 이른바 최고권력기관이다. 현재 청와대의 상황관리 방식이 그에 부합한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꼭 커튼 뒤에서 음모와 전략이 움직여야 '민정수석실'답다는 뜻이 아니다. 문재인정부 민정라인이 '보이지않는 손'이 되길 스스로 포기했다면 그에 걸맞게 더욱 치밀해야 한다. 같은 실수가 두 번, 세 번 반복되고 있다. 김조원 민정수석은 일머리를 다잡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