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시대가 모든 사람들에게 '장밋빛 미래'는 아닐 수 있다."
'탈(脫)원전'에서 '탄소중립'으로. 에너지 전환 정책의 캐치프레이즈가 바뀌었지만 국민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 지, 우리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변화할 지 제대로 공론화가 이뤄진 적은 없다.
머니투데이는 킵스와 함께 지난 18일 서울 광화문 본사 대회의실에서 '미래 분야(기후변화, AI) 대응 방안' 좌담회를 열었다. 이날 좌담회에서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에너지 전환은 필수지만 정책의 목표와 수단을 분명히 구분하고 유연한 '에너지 믹스'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이 나왔다.
무엇보다 최근 문재인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탄소중립정책'에 대한 정치권의 논의 과정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무엇보다 진영 논리나 정치권 일방의 주장에 의해 결정돼선 안된다는 지적이다. 차기 정부에서 국민투표를 시행해야 할 정도의 '대국민 어젠다'가 될 수도 있다는 의견까지 있다. 국민들의 삶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게 될 정책인만큼 충분한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결정해야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취지다.
노동석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은 "에너지 전환에 소요되는 비용을 추정해 보고 에너지 믹스 안을 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무조건 '탄소제로' 보다는 최대한 정보를 공개해 국민들이 그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 연구위원은 "탄소중립이 녹색으로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것으로 홍보되지만 문제는 탄소중립 비용이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것에 있다. 잘 사는 사람에겐 별 부담이 안 될 수 있으나 서민에게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에너지소비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비용 문제는 전혀 거론이 되지 않고 있지만 700테라와트아워 기준으로 2050년 재생에너지 비중을 80퍼센트로 잡으면 개략적인 계산으로도 1500조의 비용이 소요된다. 이것보다 전력수요가 1.5배, 2배 증가한다고 생각하면 비용이 2000조 이상 소요된다는 계산이 나온다"며 "이 돈은 국민들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다. 그런데 재생에너지 중심의 그린뉴딜, 탄소중립 정책이 새로운 투자, 새로운 일자리 창출로 포장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생에너지의 제반 한계를 고려하지 못한 과속 정책으로 에너지 전환 비용이 국민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울 수 있다는 뜻이다. 재생에너지의 발전단가가 상대적으로 비싸고 간헐성과 변동성으로 기저발전으로 부적합한 반면 기저발전에 유용하고 저렴한 원전을 '에너지 믹스'에 포함시킬 지 여부가 차기 정부에서 '뜨거운 감자'가 될 수 있다.
탈원전 정책은 원전 사고와 포항 지진 등 원자력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로 촉발됐으나 원자력 발전은 탄소나 미세먼지 발생을 유발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에너지 여건상 기후위기 대응수단으로서 원자력의 고려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탈원전을 선언한 문재인 정부가 원전을 재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진단한다.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목표 비중을 유연하고 단계적으로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나왔다. 소형 원자로, 수소 및 에너지 저장 기술, 핵융합 기술 등을 고려하되 이러한 기술이 상용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므로, 유연하고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김백민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는 "정부가 말하는 탈원전의 의미를 정확히 정의해야 의미있는 담론이 시작된다"며 "얼마 전 정부는 문무대왕연구소를 개소하였는데, 이 연구소의 목표 중 하나가 바로 소형원전 기술 개발이다. 정부의 탈원전 개념과 미래 국가 에너지 믹스에 대한 구상이 명확하지 않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탈원전을 포함해 에너지 전환에 대한 공론화와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나왔다. 문재인정부는 탈원전과 관련해 사회적 공론화를 추진했으나 개별 원전의 건설 중단을 묻는 공론화 과정은 부적절한 방식이란 비판이 제기된다. 결국 문재인정권 임기 말 대표적 정책실패로 꼽히며 사회적 갈등 유발 사례가 되고 있다.
이진 공공정책전략연구소(킵스) 대표는 "에너지 전환 정책은 여야간 정쟁의 도구가 될 수 없는, 공동의 미래 과제이다.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입법이 필요한 정책들은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논의하여 어느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정책이 바뀌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사회적 합의는 커녕 국회 여-야간 합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부치기 식의 에너지 정책이 진행되어 왔기 때문에 정책의 정당성에 큰 사회적 의구심이 있고, 다음 정권에서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탄소중립 정책도 비슷한 과정을 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의 탄소중립정책을 이끌어갈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설치를 골자로 하는 탄소중립기본법을 단독 처리 수순을 밟고 있다. 국민의힘이 반대하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민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에너지 전환 정책은 차기 정부에서 공론화를 통해, 필요하면 국민투표까지 시행해야 할 중대한 과제라는 데 입을 모았다. 이어 공론화 결과를 수용해 국회에서 법제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연구위원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하여 여러 안을 만들고 정부도 최대한 정보를 공개해 국민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지금 정부는 탈원전을 포기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좀 늦더라도 다음 정부가 국민들의 의견을 묻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치의 요체는 협상과 타협이라고 생각한다. 에너지 정책도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며 "타협과 절충, 설득과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에너지 전환 주무 부처의 변화 가능성도 제시됐다. 김 교수는 "과거 에너지 정책은 산업부가 담당했는데 지금은 환경부로 많이 넘어오고 산업부는 실행하는 부처처럼 됐다"며 "에너지와 환경을 묶어 에너지환경부를 만들자는 제안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