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예고한 4개 법안 처리를 막기 위한 야당 주도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가 반환점을 맞았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극복을 위해 "여야가 힘을 모아야 할 때"라며 필리버스터 중단을 제안했지만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악법 강행 처리 중단이 먼저"라고 거부하면서 필리버스터 대치 정국이 계속되고 있다.
국회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에서 본회의를 열고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미위) 설치법을 처리했다. 방미위 설치법 표결은 여당 주도의 법안 처리 강행에 반발한 국민의힘 의원들의 불참 속에 실시됐다. 재석 177명 중 찬성 176명(반대 1명)으로 가결되면서 2008년 출범한 방송통신위원회는 출범 17년 만에 폐지됐으며 이진숙 방통위원장도 자동으로 면직됐다.
방미위법 부칙 4조에는 '이 법 시행 당시 방통위 소속 공무원(정무직 제외)은 방미위 소속 공무원으로 본다'고 돼 있다. 현재 방통위에 임기가 남은 정무직 인사는 이진숙 위원장 1명이다. 방미위는 기존 방통위 업무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미디어 진흥 기능을 합쳐 신설된다. 위원회 구성은 상임위원 3명과 비상임위원 4명 등 7인 체제로 이뤄진다. 7인 가운데 2명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여야 교섭단체가 각각 2·3명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이들을 임명하는 구조다.
방미위법 처리로 여당이 추진하는 4개 법안 처리와 야당 주도의 필리버스터는 반환점을 돌게 됐다. 국회법에 따르면 필리버스터는 재적의원(현재 298명)의 3분의 1 이상이 종결 동의서를 제출하면 이로부터 24시간이 지난 뒤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종결할 수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 25일 정부조직법이 개정안이 상정되자 필리버스터에 돌입했고 민주당은 필리버스터 종결 동의서를 제출했다. 24시간여가 지난 전날 저녁 민주당 주도로 필리버스터 종결 동의안 표결이 가결됐고 뒤이어 정부조직법 개정안도 민주당 주도로 국회 문턱을 넘었다. 이어 상정된 방미위법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이날 표결이 실시된 것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방미위법 통과 직후 정부조직 개편을 반영해 국회 상임위원회의 명칭 등을 변경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상정했다. 법안 상정 직후 국민의힘 주도의 필리버스터가 개시됐고 개시 직후인 오후 7시38분 민주당이 종결 동의안을 제출했다. 이에 따라 24시간이 지난 28일 저녁 필리버스터 종결 표결과 국회법 개정안 표결이 순차적으로 열릴 전망이다.
민주당은 국회법 개정안에 이어 위원회의 활동 기한이 종료되더라도 증인·감정인의 위증을 국회 본회의 의결로 고발할 수 있게 하는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처리에 나선다. 국민의힘은 이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예고한 상태다.
민주당은 이날 방미위법 필리버스터 종결 동의안 표결에 앞서 국민의힘에 필리버스터 중단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병기 원내대표는 "재난(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앞에서 여야는 초당적 협력을 해야 한다"며 "형식적 무제한 토론을 중단하고 국회가 할 일에 집중하자"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여야가 차분하게 정부 사태 수습을 지원하고 개선책 마련에 머리를 맞댈 것을 제안한다"며 "필리버스터를 중단하고 민생에 복귀하자"고 제안했다.
김 원내대표의 이같은 제안에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악법 강행 처리를 모두 중단한다면 필리버스터를 중단하겠다"며 "소수 야당이 필리버스터를 중단하려면, 먼저 다수당이 여야 합의가 안 된 악법 강행 처리를 중단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라고 맞섰다.
송 원내대표는 "이번 국가전산망 셧다운 사태뿐 아니라, 교착 상태에 빠진 관세 협상의 비망록과 MOU(업무협약) 내용을 야당과 국민에게 공개하고 협조를 구하길 바란다"며 "그렇지 않고 야당의 일방적인 필리버스터 중단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말로만 민생을 외치는 대국민 사기극에 불과하다. 우리 국민의힘은 그 같은 일방적인 항복 요구에는 결코 응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전날 오후 8시15분쯤 대전 유성구 소재 국정자원에서 배터리 화재가 발생했다. 이번 사태로 정부 업무 시스템 647개가 '올스톱' 됐다. 국정자원은 대전 본원과 광주·대구 센터를 합쳐 약 1600개의 정부 서비스용 정보시스템을 운영하는데, 이번에 장애가 난 647개 시스템은 모두 대전 본원에 설치돼 있다.
국가정보시스템은 이용자수나 파급 효과 등을 따라 1~4등급으로 분류된다. 이번 화재로 손상된 서버의 경우 우선순위가 높고 중단에 따른 국민 불편이 큰 1등급 12개, 2등급 58개 등 70개 정부 서비스를 관리하는 시스템인 것으로 알려졌다. 행안부는 위기 경보 수준을 '경계'에서 '심각' 단계로, '위기상황대응본부'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로 격상해 대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