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연구원이 2014년부터 매년 조사해 온 '통일인식' 조사에서 최초로 통일 필요성에 공감하지 않은 사람의 비중이 50%를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통일이 필요 없다는 응답률은 MZ세대(1980년대초~2000년대초 출생)에서 가장 높았다. 남북이 현재와 같은 '적대적 공존' 체제로 유지돼도 좋다는 응답도 조사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통일연구원은 20일 오후 이런 내용을 담은 '통일의식조사 2025' 결과를 발표했다. 통일의식조사는 통일과 북한에 대해 가장 오래된 여론조사로 평가받는다. 올해 조사는 한국리서치를 통해 지난 7월10일부터 8월13일까지 전국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면 면접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3.1%P)한 것이다.
조사 결과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은 51%로 나타났다. 통일 필요성에 공감한 이들은 49%로, 2014년 통일연구원의 인식 조사가 시작된 이래 관련 수치가 처음으로 역전됐다. 그동안 조사에선 통일 필요성에 공감하는 비율이 더 높았다.
통일연구원 관계자는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의 영향, 남북관계 단절의 지속, 국내 정치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동한 결과로 보인다"며 "이러한 결과는 통일에 대한 인식이 단기적 변동을 넘어 구조적 변화의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통일 필요성에 공감한 이들은 모든 세대에서 전년 대비 하락 추세를 보였다. 밀레니얼 세대의 경우 응답자의 38%, Z세대는 46%가 통일 필요성에 공감했다. 모든 세대 중 가장 낮은 수치다.
남북이 현재와 같은 적대적 두 국가를 유지하며 '분단 상태를 유지해도 괜찮다'고 응답한 이들도 전체 47%로 나타났다. 적대적 공존에 동의하지 않는 비율은 25.3%에 불과했다. 북한의 위협은 일상화됐지만 남북 간 즉각적 충돌이 발생하지 않으면서 적대적 두 국가를 유지해도 괜찮겠다는 인식이 확산한 것으로 보인다.
적대적 공존에 공감하는 비율은 'IMF(국제통화기금) 세대'(외환위기를 겪은 세대)에서 55.9%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도 각각 응답자의 54.2%와 52%가 적대적 공존에 공감했다. 나이가 많을수록 적대적 공존에 공감하는 비율은 줄어들었다.
통일연구원 관계자는 "연령대가 낮은 세대일수록 적대적 공존에 대한 선호가 강해지는 세대 효과를 관찰할 수 있다"며 "적대적 공존 선호 증대는 국민이 갈등을 원해서가 아니라 불확실한 변화보다 현상 유지가 낫다고 느끼는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평가한다"고 했다.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찬성하는 이들은 전체의 36.8%로 나타났다. 인도적 지원에 반대하는 이들은 39.5%였다. 개성공단 재개와 관련해서도 찬성은 36.2%에 불과한 반면 반대는 44.6%를 기록했다. 다만 남북 정상회담 필요성과 관련해선 전체 69.4%가 공감했다. MZ세대의 60% 이상이 남북 정상회담 필요성에 공감했다.
북미 정상회담 재개 필요성에 대해선 '비핵화 문제의 실질적 진전 이후' 이뤄져야 한다는 응답이 53.3%로 가장 높았다. '완전한 비핵화'와 '조건 없이 재개'는 각각 26.7%와 18.1%로 나타났다. 어떤 상황에서도 북미 정상회담 재개를 반대한다는 입장은 1.9%에 불과했다.
통일연구원 관계자는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실상 북미 정상회담 재개에 찬성하는 비율은 18.3%로, Z세대는 가장 냉소적 태도를 보였다"며 "한국인은 북미 회담이 비핵화와 관련해 의미 있는 성과가 없을 것이라는 회의적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또 치고 나가는 통일부, 판문점 견학 중단…트럼프-김정은 '깜짝 회동' 대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의 '깜짝 회동'을 대비해 통일부가 판문점 특별견학을 일시 중단한다. 대통령실과 외교부 등은 미북 정상회담 가능성이 낮다고 보지만, 통일부는 여전히 기대를 걸고 있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20일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10월 말에서 11월 초에는 통일부에서 실시하는 판문점 특별견학은 없다"고 밝혔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출입은 유엔군사령부가 총괄하지만 국내에선 통일부의 사전 예약을 받고 민간인 견학을 허용하고 있다. 통일부가 민간인 견학을 허용하지 않을 경우 사실상 국내 수요는 없어지는 셈이다.
통일부의 조치를 두고 미북 정상회담을 대비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1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정보와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며 "(미북) 정상회담이 이뤄진다면 파주 판문점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주 APEC 정상회의 전인 29~30일쯤 방한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이재명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과 만나고 싶느냐'는 취재진의 질의에 "올해 만나고 싶다"고 답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경주 APEC에 트럼프 대통령을 초청했고 가능하면 김 총비서와의 만남도 추진해보자고 했다.
김 총비서도 지난달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개인적으로는 현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두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총비서는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첫 정상회담을 열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총비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노력 등을 담은 합의문을 도출했다. 그러나 두 정상은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 같은해 9월 판문점에서 만났으나 비핵화 협상에서 이견을 보이며 '빈손'으로 회담을 마무리했다.
유엔사는 '트럼프 대통령 방한 기간 판문점 JSA 견학 일정 조정 등이 있느냐'는 질의에 "가정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We're not commenting on hypothetical scenarios)"면서도 "판문점 JSA 출입 요청은 모두 안전 확보 및 원활한 조율을 위한 절차에 따라 처리 중"이라고 답했다.
정동영 장관은 한반도 평화 분위기 조성 등을 목적으로 9·19 남북 군사합의 복원 전이라도 실기동 훈련 등을 중단해야 한다거나 북한을 미국 본토까지 타격할 수 있는 '3대 국가' 등이라고 주장해 논란을 불렀다. 정 장관은 또 미북 정상회담 가능성도 높다고 밝혔지만 외교부는 "구체적인 진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없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정 장관과 외교부 등이 충돌하는 것을 두고 이재명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 간 갈등이 표면화한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정 장관은 대표적인 '자주파'(남북 공조 기반 외교 노선)이지만 위성락 안보실장과 조현 외교부 장관 등은 '동맹파'(한미동맹 기반 외교 노선) 등으로 분류된다.
다만 정 장관은 지난 13일 외통위 국정감사에서 "자주가 없는 동맹은 줏대가 없는 것"이라며 "저는 이 정부의 외교·안보팀 모두가 자주적 동맹파라고 생각한다"고 논란을 일축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