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21일 관세청·국가데이터처·조달청에 대한 국정감사를 진행한 가운데, 관세청에 대해서는 한국이 이른바 '수출 세탁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실효성 있는 대응책 마련을 주문했다. 마약류 반입 등 국경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도 잇따랐다. 국가데이터처를 상대로 '통계 조작' 의혹을 두고 여야 의원들이 상반된 입장이 드러나기도 했다.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에서 열린 국감에서 이명구 관세청장에게 "최근 FTA(자유무역협정)를 위반한 우회 수출이 급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회 수출은 규제·관세를 회피하기 위해 제3국으로 상품이나 부품을 수출해 가공한 뒤 원산지를 변경해 제재 시행국으로 수출하는 행위를 말한다.
정 의원은 "외국산이 한국산으로 둔갑해 관세를 물지 않고 우리가 FTA를 체결한 국가로 수출하는 형식"이라며 "우리나라가 위장 수출의 세탁국가로 전락할 위험이 있는 것인데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원산지 검증을 하는 실무 인력이 중요한데 (상황 변화에 따른) 인력 재배치도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소속 임이자 기재위원장도 "우회수출이 지난해 대비 3배 이상 증가했고 금액은 10배 이상 증가했다"며 "(미국의) 관세정책 영향이 커 보이는데 중국 같은 경우에는 지난해 대비 우회수출 건수가 2.5배 늘고 금액은 7.5배 증가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관세청에서 적출국·목적국·품목별로 정리된 통계가 없다고 하는 데 통계가 잘 돼 있어야 단속 정책이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게 아니겠나"라고 했다.
이 청장은 "우회수출로 우리 기업 제품 신뢰도가 저하될 수 있기 때문에 저희들이 집중적으로 적발하려고 한다"면서도 "이 부분에 대해 인력이 많이 배치되지 못했던 부분이 있는데 적극적인 대응을 위해 관계부처와 협의하겠다"고 했다. 아울러 "통계 관리도 좀 더 철저히 하겠다"고 말했다.
마약류 반입 등 세관 당국의 단속 강화를 당부하는 질의도 잇따랐다. 정일영 민주당 의원은 "세관에서 마약을 적발한 현황을 보면 2022년 대비 2025년 8월 3년 만에 (적발량이) 4.5배가량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며 "관세청이 철저히 단속 장비도 확충하고 인원도 늘려 (마약 사범들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같은 당의 오기형 의원도 "세관 단계 단속을 강화해야 유입량 감소를 통해 효과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김영환 민주당 의원은 불법 외환거래 문제를 짚었다. 특히 "가상자산을 활용한 환치기 수법이 지능화하고 있는데 관세청의 정보 분석 인력이 3명뿐"이라며 "최근 (논의되는) 스테이블코인 도입과 관련해서도 여러 가지 문제 제기가 이뤄지고 있어 관세청에서 변화된 수법을 좇아가기 위한 노력을 서둘러 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이 청장은 "서울세관 가상자산분석과 신설을 검토하고 전담 인력을 통해 분석을 고도화하겠다"고 답했다.
조달청을 상대로 한 질의에서도 다양한 현안을 두고 정책 질의가 이어졌다. 이인선 국민의힘 의원은 "조달청 G-PASS(해외조달시장 진출유망기업) 제도가 해외 진출 촉진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고 가점 혜택을 활용해 국내 조달시장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다"고 우려했다.
해외시장 진출을 목적으로 하는 G-PASS에 국내 조달시장 내에 대한 가산점까지 부여하면서 국내시장이 왜곡되고 있다는 게 이 의원의 주장이다. 이 의원은 "이 제도가 국내에서 편하게 점수 받는 길을 열어줘 1점 차이로 당락이 갈리는 국내 조달시장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다"면서 "해외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가 국내 조달시장 가점 혜택을 활용해 수출은 하지 않고 국내 조달시장을 교란하는 것이 큰 문제"라고 했다.
안도걸 민주당 의원은 인공지능(AI) 3대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구리·알루미늄 등 핵심 광물자원 비축 확대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안 의원실은 데이터센터와 재생에너지, 에너지고속도로 세 분야 인프라 확충을 위해 조달청이 향후 5년간 구리 3만9000t(톤)을 더 비축해야 하고 알루미늄 역시 현재 19만t에서 28만5000t 수준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봤다.
안 의원은 이 같은 비축 확대에 드는 추가 예산을 약 6700억원으로 추정했다. 그는 "대규모 자금 투입이 필요한 만큼 정부 투자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민·관 공동비축제도를 적극 활용해 민간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참여기업에 대한 정책자금 융자 지원을 검토하고, 정부 우선 구매권을 부여하는 기업에 대해 금리 우대도 해야 한다고 본다"고 제안했다.
국가데이터처를 상대로 한 질의에서는 부동산 통계 조작 의혹과 관련한 감사원의 감사가 주요하게 다뤄졌다. 감사원은 2023년 9월 문재인 정부가 2017~2021년간 집값과 소득·고용에 관한 정부 공식 통계를 조작해 왔다는 감사 중간 결과를 발표하고, 검찰에 청와대 정책실장 4명 전원과 국토교통부·한국부동산원·통계청(현 국가데이터처) 직원들에 대한 수사를 요청한 건이다.
최은석 국민의힘 의원은 안형준 국가데이터처장에 "감사원에 따르면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 통계와 관련해 최소 102차례 조작이 있었다는 것"이라며 "통계의 중립성과 독립성이 흔들린 사례는 국가데이터처에도, 과거의 통계청에도 뼈아픈 경고"라고 했다. 같은 당의 박수영 의원도 "부동산원 통계 102번 조작에 관해 사실이다 아니다 다툼이 좀 있지만 직원들이 사전에 압박을 받았던 것은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김영진 민주당 의원은 "통계청에서 진행한 정상적인 통계 행위에 대해 정권 입맛에 맞게 통계청장과 직원들을 고소·고발해 지금까지 재판하는 행태가 맞느냐"며 안 처장에게 물었다. 안 처장은 "3년간 감사를 받았는 데 결국 문제가 있는 사람은 없는 것으로 정리됐다"며 "감사 결과에 비해 너무 오랜 기간 감사를 받다 보니 국가 통계 신뢰성이 낮아진 데 대한 아쉬움이 있다"고 밝혔다.
정태호 민주당 의원도 "통계청에서 통계 조작했다는 것은 무죄 판결이 나왔고 부동산 관련한 재판에서도 부동산원 직원이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통계를 조정해 달라는 지시사항은 없었다'라는 증언도 했다"며 "감사원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강압 감사한 사안을 갖고 재판까지 받는 것 자체가 불행한 일이다. 빨리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국감 초반 야당 의원들은 인천세관 마약수사 외압 의혹 사건을 집중 추궁했다. 이 사건은 2023년 1월 말레이시아 국적 피의자들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대량의 필로폰을 밀수한 것과 관련해 서울 영등포경찰서에서 인천 세관 공무원 연루 진술을 확보, 수사하던 중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과 경찰·검찰·국가정보원·관세청 고위 간부들이 사건 은폐를 위해 외압을 행사했다는 내용이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 의원들은 관세청장을 상대로 사실관계를 따져 물으며 당초 의혹을 제기했던 마약 운반책의 진술이 허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철저한 수사를 당부한 데 대해서도 "(외압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백해룡 경정의 망상에 불법적인 지시를 했다"(유상범 국민의힘 의원)는 등의 비판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