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오는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로 미루기로 했다. 다만 오는 8월 차기 지도부가 선출되는 만큼 합당 논의 재개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계파 갈등 양상으로 비화하며 동력을 잃어가던 이번 합당 추진은 갑작스레 불거진 특검 추천 논란이 결국 종지부가 됐다. 합당 논의 불발로 정청래 대표 리더십이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된 만큼 이후 당내 계파 투쟁은 한층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은 10일 의원총회와 심야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잠정 중단하기로 뜻을 모았다. 지난달 22일 정 대표의 전격적인 합당 제안 후 19일 만이다. 지방선거에서의 확실한 승리를 위해 합당의 필요성을 강조한 정 대표는 한 발 물러서야했고 절차적으로도 시기적으로도 무리한 합당 추진이라고 지적해 온 친명(친이재명)계는 판정승을 거두게 됐다.
정 대표는 이날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에서 열린 비상 최고위 직후 브리핑을 통해 "더 이상의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통합이 승리와 성공을 뒷받침할 것이란 믿음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이어 "혁신당에 제안한다.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 구성을 제안한다"며 "지방선거 이후 위원회를 중심으로 통합을 추진하자"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 선당후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 찬성도 반대도 애당심"이라며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은 제 부족함 때문이다. 국민과 당원 그리고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전했다.
정 대표의 합당 제안 직후부터 민주당은 극심한 계파 갈등 양상을 보였다. 정 대표의 합당 제안 계획을 조국 혁신당 대표보다 하루 늦게 인지한 친명계 최고위원의 극심한 반발은 원내를 넘어 일반 당원들 사이로도 확대됐다. 정 대표와 정 대표의 결정을 두둔하는 이들을 묶어 2023년 9월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이 대통령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 당시 찬성표를 낸 비명(비이재명)계가 곧 친청(친정청래)계라는 주장이 고개를 들었고 겉모습은 민주당(파랑)이지만 속은 국민의힘(빨강)과 다를 바 없다는 수박론이 재차 등장하기도 했다.
정 대표를 향한 정치적 압박도 거셌다. 당 대표 선거 공약임과 동시에 당 대표 연임 포석으로도 해석됐던 전 당원 1인 1표제를 관철한 직후였던 탓에 이번 합당 제안이 그 연장선상에서 추진된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정 대표는 당내 토론을 위한 단순한 제안이라고 반보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정 대표는 1~3선 및 중진 의원들과 릴레이 간담회에 나서는 등 설득 작업을 펼쳤으나 결국 뜻을 관철시키지는 못했다.
갈등 국면에서 불거진 민주당의 특검 후보 추천 논란은 그렇지 않아도 힘을 잃어가는 합당 추진 움직임의 남은 불씨마저 꺼트렸다. 민주당이 특검 후보로 추천한 전준철 변호사는 과거 대북송금 의혹을 받는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 쌍방울그룹 측 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이성윤 민주당 최고위원이 천거한 전 변호사는 이 최고위원이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시절 요직을 맡았던 '이성윤사단'으로 분류된다.
이후 민주당의 특검 후보 추천에 대해 이 대통령이 불쾌감을 표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친명계가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친명계는 이재명 당 대표 체제였을 당시 특검 후보 추천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조언 및 율사 출신 의원들의 평가 속에서 결정됐는데 이번 추천은 정 대표가 측근만 믿고 검증없이 후보를 추천한 탓에 논란이 불거졌다고 직격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서 정 대표의 합당 설득은 더욱 설 자리를 잃었다.
합당 논의가 사실상 기약 없이 미뤄지면서 정 대표의 당내 리더십은 크게 흔들리게 됐다. 이날 의원총회를 앞두고 민주당 내부에선 당 대표 연임을 포기하겠다는 수준의 약속 없인 정 대표가 합당 동의를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정 대표가 당 대표 연임 의지를 이어가고 있는 만큼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내 계파 투쟁은 한층 격화할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친명계는 이번 합당 논의 과정에서 결속력이 한층 강화됐다. 정 대표와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워온 이언주·강득구·황명선 최고위원 등 친명계 70여 명은 오는 12일 '이재명 대통령 사건 공소취소와 국정조사 추진을 위한 의원모임'을 발족할 예정이다. 박성준 의원이 상임 대표를, 김승원·윤건영 의원이 공동대표를, '대장동 변호사' 출신의 이건태 의원이 간사를 각각 맡았다. 정 대표와 당 대표 경쟁을 펼친 박찬대 의원을 비롯해 '이재명 2기 지도부' 소속 의원들도 다수 이름을 올린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