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31일 '긴급재정경제명령권'까지 거론한 것은 중동 전쟁 장기화로 인한 민생·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가용한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초유의 비상 상황임을 감안해 모든 정부 부처가 대책을 적극 발굴해 특단의 대안을 찾고 신속히 집행해 달라는 뜻이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중동 전쟁의 여파로 세계 경제에 비상등이 켜졌다"며 "(위기 극복을 위해) 좀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관행에 얽매이지 말라며 "긴급할 경우 헌법이 정한 긴급재정경제 명령권을 활용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긴급재정경제명령은 헌법 76조에 규정된 대통령의 고유 권한으로 '내우·외환·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 등으로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절차를 기다릴 만한 여유가 없을 때 대통령이 법률적 효력을 지닌 명령을 내릴 수 있게 한 제도다. 발동 후 국회로부터 사후 승인을 받아야 한다. 33년 전인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 재임 시절 금융실명제 시행 당시 발동된 게 가장 최근 사례다.
정치권에선 이 대통령의 발언이 26조 2000억원 규모의 전쟁 추경안(추가경정예산안)이 의결된 날 나온 데 주목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중동발 위기를 그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에 "반드시 추가적인 재정 마련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위기 대응을 위해 필요한 게 있다면 입법 절차에 구속되지 말고 할 수 있는 방안을 신속하게 찾아서 최대한 적용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위원들에게 "법적으로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시행령과 지침을 바꿔 좀 더 과감하게 해 주면 좋겠다. 모든 법 제도는 긴급한 경우 예외가 있다"며 입법 대체가 가능한 긴급경제명령 제도를 언급했다. 강유정 청와대 대변인은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는 뜻"이라며 "관료들이 관행에 얽매이지 않고 문제 해결을 위해 좀더 적극적이고 자율적인 대안들을 내놓으라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청와대 안팎에선 주어진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 선택지를 확보하는 이 대통령의 평소 스타일을 감안하면 중동 상황이 최악으로 흘러갈 경우 실제 긴급재정경제명령권 발동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신속한 추경 편성을 주문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국민에게 돈을 쓰는 것이고 그러자고 세금을 걷는 것"이라며 "(재정을) 잘 쓰는 게 정부가 하는 일이지 안 쓰는 게 정부가 하는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한편, 이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긴급재정명령을 언급한 건 이번이 세번째다. 2022년 대선 후보 시절 방역조치 완화와 함께 '50조원 규모 긴급재정명령' 구상을 제시한 적이 있다. 당시 이 대통령은 "제가 당선되면 여의치 않을 경우 긴급재정명령을 발동해서라도 국민께 약속한 50조원 이상의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경기도지사를 지냈던 2020년 4월에는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민생 지원을 위해 "여야가 모두 동의한 긴급재난지원금을 모든 개인에게 100만원씩 긴급재정경제명령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제안하기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