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한국의 외교안보 정책을 일일이 열거하며 핵무력 강화의 빌미로 삼는 입장문을 이틀 연속 내놨다. 이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회담할 당시의 사진을 아무런 문구 없이 게재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북한이 한국을 압박하면서 미국에 손을 내미는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을 다시 꺼내든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4일 외무성 대변인 명의 담화를 공개했다. 대변인은 최근 제6차 한미 핵협의그룹(NCG) 회의와 미일 간 확장억제대화(EDD)에서 '북한의 비핵화'가 언급된 것에 대해 "비핵화는 되돌릴 수 없는 종결된 사안"이라며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반발했다.
특히 외부의 간섭과 위협을 억제하고 국가의 주권과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핵방패 구축'을 강조하며, 핵 개발이 외부 위협에 대응한 자위권 행사 차원임을 강변했다. 한미일의 북한 비핵화 의지 표명을 자신들에 대한 위협으로 왜곡 해석하며 '핵 고착화'의 명분을 쌓은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또 전날 한국을 압박하는 차원의 입장문을 오전과 오후 두 차례 내놓기도 했다. 북한 대외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오전 최근 미국이 한국에 중거리 공대공미사일 'AIM-120C-8 암람(Advanced Medium Range Air-to-Air Missile·AMRAAM)' 70기와 암람 유도 섹션 2대에 대한 대외군사판매(FMS)를 승인한 것과 관련된 외무성 대외정책실장의 반발 입장을 보도했다.
이와 함께 조중통은 오후 6시쯤엔 대남대적사업의 실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진 외무성 10국 대변인 명의의 비난 담화도 공개했다. 대변인은 담화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이 EU(유럽연합) 정상들과 채택한 공동성명에서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북러 군사협력을 지적한 데 대해 "명백한 주권침해이자 엄중한 적대행위"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북한의 잇따른 입장 표명은 한미일의 안보 공조에 대한 불만을 드러냄과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의 뒷배를 기반으로 자신들을 향한 안보 공세를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심산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담화에서 '가용한 모든 범주의 능력과 수단'이나 '군사기술적 대안들의 전방위적 강구' 등을 명시하며, 향후 핵·미사일 도발이 감행될 수 있음을 예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이번 담화가 지난 8~9일 북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북한 핵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전략적 관계' 강화를 밝힌 직후 나왔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은 것 자체가 김 위원장에게는 핵 보유의 명분과 자신감을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트루스소셜에 별도의 설명도 없이 김 위원장과 나란히 걷는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을 게시한 점이 눈길을 끈다. 해당 사진은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인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차 북·미정상회담 당시 촬영된 것으로 두 정상이 회담장인 카펠라 호텔 정원을 함께 산책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중동전쟁 종전 합의가 임박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다음 시선이 북한으로 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을 향해 2018년 싱가포르 합의 정신을 기반으로 한 핵 협상을 진행하자는 예고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다만 김 위원장이 이에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중국·러시아와의 밀착을 통해 뒷배를 확보한 만큼, 굳이 핵 문제를 의제로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나설 이유가 없다고 분석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 위원장의 현재 최우선 순위는 협상을 통한 타협이 아닌 '핵무력의 질적·양적 고도화'에 있다"며 "2018년에는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핵 무기를 내세웠다면, 지금은 핵 보유 자체를 기정사실화하고 장기 구조전을 준비하는 양상"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