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혁명에 따른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과 초격차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이념과 진영 논리를 뛰어넘는 '더 큰 정치'가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국가적 정책 과제에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 온 과거에 대한 자성과 성찰을 토대로 미래지향적인 국가 아젠다(정책의제) 설정을 위한 보다 큰 정치, 보다 큰 타협이 긴요하다는 것이다.
김성식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장관급)은 16일 머니투데이 더(the)300과 인터뷰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3대 메가 프로젝트를 통해 국민과 '꿈'을 나누고 혁신의 추진력을 확보하려 한다"며 "이를 매개로 정치가 공동책임·공동설계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정권이 바뀔때마다 앞선 정부의 정책이 백지화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이 지게 되는데
▶정책이 냉온탕을 오가고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했다. 중요한 문제일수록 더 자주 엎어지고 난마처럼 얽힌다. 노동유연성 문제가 대표적이다. 보수가 정권을 잡으면 유연성만, 진보가 정권을 잡으면 보호만 강조하다가 아무것도 해결 못 했다. 그러다 AI(인공지능) 시대가 갑자기 왔다. 채용은 줄어들고 청년층의 어려움은 가중된다. 정치세력의 과거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노동뿐 아니다. 환경이나 에너지, 자원문제 등이 계속 이념화·정치의제화하는데
▶그래서 보수정권이라고 보수 정책만, 진보정권이라고 진보 정책만 했는지를 정치권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DJ때는 부실이 총체적으로 터진 상태에서 오히려 신자유주의 개혁을 했다. 노무현 정부때 해낸 FTA(자유무역협정)도 사실 보수정권의 가치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도 그렇다. 대단히 보수적 아젠다인데 국가안보 차원에서 강행해 해냈다. 이런 노력이 없었다면 얼마나 큰 사회적 비용이 더 들었겠나.
-진보·보수를 따지지 않고 정책을 추진할 때 효과가 컸다는 말인가
▶우리나라의 많은 문제가 언제 풀렸는지를 보자는 거다. 정권의 성격에 부합하는 정책을 할 때? 아니다. 각 정권이 오히려 반대의 정권이 맡아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을 때, 그리고 그걸 과감하게 추진했을 때 우리나라가 여기까지 오는 강한 동력이 됐다. 보수정부때도 마찬가지다. 재형저축 도입이나 남북기본합의서, 북방사업, 국민연금 도입 등이 모두 보수정권에서 시작됐다.
-지지계층뿐 아니라 반대진영도 설득해야 한다는 의미인가
▶물론이다. 우리나라에만 유용한 공식이 아니다.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공화당 출신임에도 반독점 투쟁의 기수 노릇을 했다. 독일에선 노동자 4대보험의 기틀을 잡은 게 가장 보수적인 비스마크르다. 구조조정을 유연하게 만든 쉬뢰더 전 총리의 하르츠 개혁도 진보진영에서 추진했다. 정권을 잃기도 했지만 그래도 독일이 점프하는 계기였다.
-3대 메가 프로젝트와 관련해 과거 민주당이 반대했다가 적극 추진하는 정책들에 대해 설명과 사과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는데
▶우리 정치권 모두 국민들께 정책을 충실하게 설명하지 않은지 제법 오래 됐다. 하고자 하는게 있으면 밀어붙이기만 하지, 이 정책이 왜 필요하고 국민 개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충실히 다 설명하지 않는다. 성찰해야 할 대목이다. 다만 설명과 사과가 상대 진영의 공격지점이 되니까, 극단적 양당구조 내에서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정책전환에 대해 설명은 해야 설득력이 커질 것이다.
-과거 정책이 온통 부정되며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는데
▶그래서 더 큰 정치가 필요하다. 탈이념이나 탈정치가 대안이 아니라는 거다. 탈정치는 정치가 해결하지 않고 대중의 판단이나 포퓰리즘에 미루는 걸로 귀결될 수 있다. 오히려 더 큰 정치를 통해 타협하고 성찰하고, 좋은 건 계승하고 잘못된 것은 고쳐나가야 한다. 국민의힘이 내란과 확실하게 선을 긋는 것이 출발점이다. 민주당도 이젠 '586'의 시야를 넘어서야 한다.
-큰 정치에 도달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지금 기회가 왔다. 대통령이 경제대전환의 꿈을 국민과 나누려 하고 있다. 3대 메가 프로젝트로 성장의 추진력 확보를 위한 비전이 어느 때보다 넉넉해졌다. 굵은 과제를 타협해보자는 화두가 유효할 수 있다. 3대 메가 프로젝트는 사실 보수적 아젠다다. 기업을 통해 성장잠재력을 높이고, AI시대를 능동적으로 맞이하고, 반도체 초격차를 유지하자는 거다. 합의에 유리하다. 여러모로 슈퍼사이클이 지금 우리에게 왔다.
-현실적 방법론은 무엇일까
▶3대 메가 프로젝트 자체를 제안한 것으로 정부의 역할이 끝난 게 아니다. 이걸 통해 어떻게 더 좋은 국민경제를 구현하고, 어떻게 개개인의 삶을 개선할지 조금 더 충실히 설명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인프라 구축에 죽기살기로 달라붙어야 한다. 전력·용수·입지와 학교 등은 특별입법 해야 한다. 시간싸움을 확실하게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성장잠재력을 확 끌어올리고 규제 완화까지 확실하게 해야 한다. 나아가 청년의 어려움을 직시하고 미래세대 기회 만들기도 동반해야 한다. AI공존형 일자리에 청년들이 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3대 메가 프로젝트는 우리 경제에 어떤 의미일까
▶놓치면 안 되는 기회다. 그리고 이 기회와 함께 숙제도 엄청나게 커졌다. K-양극화 등 따라붙는 문제에도 확실히 답을 해야 한다. 다행인 것은 대통령부터 문제의식을 확실히 갖고 있다는 거다. 범정부 차원의 정책적 상상력과 행정혁신이 뒤따라야 한다. 그래서 그늘에 있는 사회구성원 곁에 국가가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잘 해낸다면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는 물론 정책적으로 점프하는 계기가 될 거다.
-이 상황에서 정치의 역할은 뭘까
▶마지막 퍼즐이다. 타이밍이 왔고 대통령을 중심으로 준비도 이뤄진다. 이제 국회만 선진화하면 우리는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 사실 우리는 중국에 가랑비 옷 젖듯 질식하고 있다. 변화의 계기가 없었다. 미중 갈등이 벌어지며 첨단 및 전략분야에서 우리의 공간이 생겼다. 그러다 AI시대가 열렸다. 고정투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급증한다. 지금 공급능력 면에서 초격차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이 틈은 중국이 밀고들어오는 공간이 된다. 더구나 내년은 선거가 없는 해다. 이 때 여야가 AI를 매개로 아주 초당적인 정치적 타협을 해야 한다. 재차 강조하지만 국민의힘은 내란세력과 빨리 정리하고, 민주당은 586세대를 넘어 정치적 전망을 넓혀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시대를 향한 공동책임, 공동설계, 공동노력이 가능하다. 방법론에서 견해 차이가 있으면 토론하면 되지 않나.
-이재명 정부 실용주의에 거는 국민적 기대가 매우 큰데
▶이재명 정부엔 두 개의 큰 교훈이 있다. 박근혜 탄핵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1년만에 추진력을 잃고 그 개혁이 좌초된 이유는 뭔가. 서민정책 효과가 의도와 반대로 나타나서다. 윤석열 정부는 왜 저렇게 됐나. 정책효과는 살피지 못하고 하고 싶은 것만 했다. 이재명 정부는 실용의 가치를 여기서 찾아야 한다. 실용을 또 하나의 이념으로 삼으면 안 된다. 과거 정부의 잘잘못에서 교훈을 얻고 스스로의 생각도 유연하게 하면서 정책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그래야 국정에 추진력이 생기고 그래야 국민이 편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