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마약류 압수품에서 동물용 진정·진통제 성분인 메데토미딘이 200건 넘게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이 이들 성분을 마약류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근거가 부족하다며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정을 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1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마약류 남용 관련 압수품에서 메데토미딘이 검출된 사례는 지난해 184건, 올해 상반기 50건으로 총 234건이었다. 이 가운데 케타민 17건, 합성대마류 14건, 에토미데이트 1건 등 다른 약물과 혼합된 사례도 32건 확인됐다.
메데토미딘은 동물의 진정·진통 등에 사용되는 의약품 성분이다. 미국 등에서는 펜타닐·헤로인과 혼합돼 불법 유통되는 사례가 확인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기존 마약류의 대체재로 오남용되는 정황이 나타났다. 수사 과정에서 필로폰·대마초 운반책이 메데토미딘을 함께 취급하거나, 케타민·합성 대마로 알고 은닉한 물질에서 메데토미딘이 검출된 사례도 있었다.
경찰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식약처에 메데토미딘의 마약류 지정을 총 6차례 요청했다. 그러나 식약처는 약리학적 검토 등을 거쳐 지정 필요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메데토미딘이 기존 마약류의 대체재로 오남용되고 있는 만큼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는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NIMS)을 통한 취급 내역 보고 의무가 없고, 단순 투약에 대한 별도 처벌 규정도 없어 관리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규제를 강화하는 움직임도 있다. 영국은 메데토미딘의 중독·금단 사례와 기존 마약류를 대체할 가능성 등을 고려해 지난해 규제약물 지정을 권고했으며 올해 관련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프로포폴 대체재로 불법 투약되던 에토미데이트가 경찰의 첫 지정 요청 이후 약 7년이 지나서야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된 사례가 있다. 새로운 약물의 오남용 위험을 막기 위해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칠승 의원은 "마약류 지정에 과학적 검토도 중요하지만 불법 유통과 오남용 실태 및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경찰이 여섯 차례나 지정 필요성을 제기하고 국과수 감정에서도 234건이 검출된 만큼 현장에서 확인되는 위험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에토미데이트 역시 불법 투약과 오남용이 사회문제로 확산된 뒤에야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됐다"며 "마약류 관리에 있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새로운 약물의 오남용 위험을 선제적으로 점검하고 필요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