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출자고리 해소와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화를 유도하기 위한 정부의 잇딴 규제완화와 세제혜택 부여로 지주체제의 정착이 가속화되고 있지만 정작 삼성, 현대차 등 한국을 대표하는 주요그룹에서는 여전히 지주체제로의 이행이 더디다. 현행 제도 하에서는 과도한 비용이 수반되기 때문에 선뜻 나설 수 없다.
현재 국회에 계류된 지배구조 관련법안이 어떻게 될지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몸소 서명에 참가하면서 부각된 '기업활력제고를 위한 특별법'을 비롯해 일반지주사가 금융지주사를 지배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등이 대표적이다.
인터넷은행업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는 은행법 개정안도 종전까지의 엄격한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엄격한 분리를 규정)를 완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대기업 지배구조 개편에 영향을 미치는 법안으로 꼽힌다.
◇ 원샷법, 절차간소화에 비용절감…추가적 지주규제 완화까지
지난해 7월 이현재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기업활력제고 특별법은 이른바 '원샷법'으로 불린다. 일본이 장기불황에 허덕이던 1999년에 '산업활력법'이라는 이름으로 시행된 바 있다. 2014년에 이 법은 다시 '산업경쟁력강화법'으로 확대개편되기도 했다. 일본중앙은행(BOJ)의 대규모 양적완화와 함께 일본경제의 활력제고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원샷법이라는 명칭이 담고 있는 것처럼 다양한 영역에 걸친 규제완화를 담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원샷법이 시행되면 합병, 증자, 신규 법인설립시 등록면허세율이 종전 0.4%에서 0.2%로 낮아지고 사무실, 공장 등의 부동산을 취득할 때 내는 세율도 4%에서 2%로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게 된다.
현재는 기업 인수합병(M&A)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회사가 의무적으로 반대주주 주식을 사들여야 하는데(반대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 원샷법이 시행되면 이와 관련한 규제도 대폭 완화된다. 기업 합병시 발행되는 신주규모가 시가총액의 10% 미만일 경우 주주총회 개최의무를 면제하도록 한 소규모합병 관련규정도 완화된다. 주총을 개최하지 않아도 되는 소규모 합병의 규모를 20%까지 늘리기로 하는 내용도 원샷법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지주사가 증손회사를 보유할 때도 현재는 원칙적으로 100% 지분을 보유해야 하지만 증손회사가 상장사일 경우에는 20%, 비상장사일 경우에는 40%의 지분만 보유해도 가능하도록 규제가 완화될 예정이다.
◇ 중간금융지주사법, 삼성·현대車 등 지주전환때 선결과제
현재 공정거래법은 일반지주사 금융지주를 지배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 규제가 남아있는 한 삼성그룹이나 현대차그룹 등 주요 대기업이 이미 금융자회사를 다수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관련규제가 풀리지 않는 한 지주전환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공정거래위원회, IBK투자증권 등에 따르면 상호출자제한 규제를 받는 61개 기업집단 중 절반에 이르는 30곳이 금융자회사를 두고 있고 24곳이 총수가 존재하는 금산(金産)복합 기업이다. 총수가 지배하는 이들 24곳은 모두 지주전환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김장원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들 기업이 지주사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중간금융지주사가 가능하도록 법이 개정되거나 금융자회사를 지배구조 밖으로 끌어내야 한다"며 "
2012년 9월 김상민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중간금융지주사를 일반지주 체제 내에 둘 수 있도록 허용하는 규정을 담고 있다. 금산복합기업의 순환출자를 해소해 지배구조 투명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한 조치다. 아울러 중간금융지주사가 허용될 경우 기업집단 내의 금융자본과 산업자본 사이의 출자관계나 자본의 이동이 차단된다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는 평가다.
이외에도 지난해 인터넷전문은행 도입을 계기로 국회에 발의돼 있는 은행법 개정안도 금산분리 원칙에 금이 가게 할 수 있는 법안으로 꼽힌다. 현재는 산업자본이 보유할 수 있는 은행지분이 4%로 제한하고 있지만 인터넷 전문은행에 한해 30~50%로 확대할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국회통과 관건…소수주주 보호, 재벌특혜 등 논란 여전
하지만 19대 국회가 문을 연 2012년 이후 지금까지 4년이 다 돼가고 있는데도 여전히 계류돼 있는 중간금융지주사법을 비롯해 원샷법 제정안, 은행법 개정안 등도 여전히 여야간 합의도출 실패로 언제 통과될 수 있을지 요원하기만 하다. 중간금융지주사법, 은행법은 현재 논의가 잠깐 수면 아래로 내려간 상황이나 원샷법에 대해서는 여전히 여야간 첨예한 입장차이가 좀체 좁혀들지 않고 있다.
야당 측은 원샷법이 대기업 대주주의 편법적인 지분상속 등을 정당화하기 위한 특혜법이라며 강공을 펼치고 있다. 원샷법의 수혜를 받는 기업집단에서 10대그룹을 제외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도 나오고 있다.
기업의 신진대사를 가속화한다는 명분 하에 어느 분야의 산업을 보호하고 어떤 규제를 철폐할 것인지 기준이 명확치 않아 정치적 영향력이 큰 일부 업종에만 수혜가 돌아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기업의 사업재편이나 구조조정을 법률이 아니라 시장의 손에 맡겨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르는 상황이다.
아울러 특별법 형태로 기업규제가 대폭 완화되면 기존의 법체계의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윤승영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위원은 "전 세계적으로 정상적 기업의 사전적 구조재편 결정에 정부가 법률 형태로 지원하는 사례는 일본을 제외하고 찾아보기 어렵다"며 "사전적인 사업재편의 발목을 잡는 것은 입법의 미비가 아니라, 오히려 불투명한 경영권 승계 과정과 같은 오너리스크의 문제가 더욱 큰 장애물"이라고 지적했다.
윤 위원은 "특별법안은 상법과 공정거래법의 소수주주 보호를 위한 대부분 규정들에 대한 예외를 인정해 절차를 간소화하거나 요건을 완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향후 사업재편과 관련된 상법, 공정거래법, 자본시장법 등에 대한 개정의 시발점이 될 수 있고 이는 기업 지배구조의 심각한 후퇴로 연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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