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도 출처를 밝혀야 합니다"

박보희 기자
2016.01.24 09:00

[the L][인물포커스] 남형두 연대 교수, '법률가와 표절' 법학논문상 수상

◇ 더엘(the L) / 인물포커스 ◇

남형두 연세대 로스쿨 교수/사진=머니투데이

"판사가 판결문을 쓸 때도 원본의 출처를 밝혀야 합니다. 만약 밝히지 않으면 법률 위반이 될 수 있습니다."

파격적인 주장이다. 지금까지 판결문에서 타인의 이론이나 논문 등을 인용하면서 각주를 단 경우는 없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는다면 저작권법 위반을 비롯해 표절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같은 주장을 한 이는 남형두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51·연수원 18기)다. 남 교수는 이같은 내용은 담은 '법률가와 표절'이라는 논문으로 지난 22일 제20회 한국법학원 법학논문상을 수상했다.

◇"독창적 아이디어가 판결에 반영됐다면 출처 명시해야"

연세대 로스쿨 연구실에서 지난 19일 만난 남 교수는 "법관들에게 불편한 내용이고, 도발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며 "그런 점에서 이 논문을 수상작으로 선택해 준 심사위원들의 열린 사고에 고맙다"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그는 지적재산권 분야의 전문가로 통한다. 지난해 펴낸 단행본 '표절론'은 표절에 관한 최초의 전문 체계서로 평가된다.

남 교수가 '판결문의 표절'에 관심을 갖은 것은 1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법학계와 법실무계의 산학연계'라는 아이디어가 시작점이었다.

"처음에는 판결문에 각주를 붙이는 것이 법학계와 법실무계가 서로 발전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이라고 보고 '산학연계'라는 표현을 썼어요. 필수적이라기보다는 가급적 하는 것이 좋겠다는 거였죠."

하지만 지난해 '표절론'을 준비하며 이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판단이 섰다. 판결에서 학자의 논문이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가져다 쓰면서 출처를 밝히지 않으면 법률적·윤리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적용 대상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로 한정했다. 그는 "주로 사실 관계를 따지는 1, 2심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적다"고 그 이유를 말했다. 하지만 간통죄나 동성결혼 등 판결 결과에 따라 사회 전반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결정을 내릴 때, 기존의 이론이나 학자들의 독특한 아이디어가 반영이 됐다면 이를 밝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예를들어 6년 전 음란물도 저작권 보호 대상이 되느냐는 논란이 있었어요. 지난해 대법원 판결이 처음 나왔죠. 이런 결정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이 분야에 대한 연구물이 있었을 거에요. 저도 5~6년 전부터 관련 연구물을 내놨었고요. 판단의 근거가 된 아이디어들이 있다면 판결문에도 출처를 밝혀야 한다는 이야기에요."

실제 미국에서는 연방대법원이 판결문을 낼 때 인용한 연구나 서적 등이 있다면 각주를 붙인다.

◇"판결은 국민을 설득하는 일…친절한 설명 필요"

판사들의 반발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그는 '판결에 각주가 붙으면 불필요한 논쟁을 낳는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고 봤다. 각주에 달린 연구자의 평가나 행실 등이 판결의 신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정제된 학자의 글을 인용해야겠죠. 학자의 글이라고 다 옳은 것은 아니니까요. 판결은 국민을 설득하는 글이에요. 복잡한 사회에서 판사가 모든 것을 다 아는 신은 아니기때문에 관련 전문가의 연구를 인용했다고 밝혀서라도 친절하게 설득을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봐요. 만약 이를 불필요하다고 여긴다면 권위주의적인 것 아닐까요."

그는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일명 '지적재산권·표절 사냥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지적재산권·표절 사냥꾼'이란 상업적, 정치적 목적으로 지적재산권 또는 표절 침해 사례를 찾아 문제제기를 하는 이들을 말한다.

남 교수는 "표절 검증은 매우 신중하게 이뤄져야 하고, 여론몰이식 재판은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표절검색 프로그램을 이용해 '똑같은 부분이 얼마만큼이니 표절'이라고 판단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똑같은 부분이 얼마큼 있는지에 따라 표절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에요. 일반적 지식은 오히려 출처를 밝히는 것이 이상한 일이 되기도 하죠. 학문적 논의를 통해 정밀하게 이뤄져야 합니다. 프로그램을 돌려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그는 이번 논문을 통해 합리적인 논쟁의 장이 열리길 바랐다.

"그동안 교육 과정에서 연구윤리에 대해 소홀하게 다뤄져왔어요. 교육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내 것과 남의 것을 구별해서 쓰는 것을 가르쳐야 해요. 예방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번 논문이 그 시작이 되길 바랍니다."

남형두 연세대 로스쿨 교수

[Who is?]

남형두 연세대 로스쿨 교수(연수원 18기)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워싱턴대에서 법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법무법인 광장에서 지적재산권 전문 변호사로 일했다. 지난 2005년에는 연세대 로스쿨로 자리를 옮겨 관련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발간한 '표절론'은 국내 최초의 표절분야 학문 연구서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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