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인 문제가 생겨 상대방에게 뭔가 조치를 취하려고 할 땐 크게 두 가지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민사적인 조치이고, 둘째는 형사적인 조치다.
민사적인 조치는 민사소송을 제기해 상대방에게 일정한 행위를 청구하는 것(통상 돈을 달라고 요구)을 말한다. 형사적인 조치는 상대방을 검찰이나 경찰 등 수사기관에 고소해 처벌을 요구하는 것을 말한다.
◇ "형사 조치 원하는 의뢰인들…공격하는 입장에선 '효과만점'"
민사적인 문제와 형사적인 문제는 사실 별개다. 다만, 상황에 따라 민사적인 문제와 형사적인 문제가 '동시에'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의뢰인은 형사적인 조치를 원한다.
그 이유는 첫째, 민사적인 조치를 위해선 기본적으로 비용이 들지만 형사적인 조치를 위해선 비용을 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민사적인 조치를 하기 위해 법원에 소장을 제출해야 하는데 그 소장에는 일종의 수수료인 인지를 붙여야만 하고, 막상 재판을 하려면 변호사나 법무사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형사고소를 제기하면 일정 요건에 따라 고소장만 작성해 수사기관에 제출하면 수사기관이 알아서 수사를 진행해 주기 때문에 별도로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둘째, 민사보다는 형사절차를 진행할 때 상대방이 느끼는 압박감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민사 법원을 통해 상대방으로부터 소장을 송달 받는 것보다 갑자기 전화를 통해 "여기는 경찰서입니다. ㅇㅇ죄로 고소를 당했으니 모레 아침 9시까지 신분증을 갖고 경찰서으로 나오세요"라는 소환통보를 받으면 얼마나 떨리고 겁이 나겠는가? 지금까지 한 번도 경찰서에 조사받으러 가본 적이 없는 사람으로서는 소환통보를 받으면 그 날부터 밥이 안 넘어 갈 것이다. 공격하는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효과만점.
이처럼 피해자가 형사고소를 제기해 수사가 진행되면 가해자는 처벌수위를 낮추기 위해 적극적으로 피해자와 합의를 하려 하고 그 과정에서 원만하게 합의가 되면 굳이 민사조치를 하지 않더라도 금전적인 만족을 얻게 된다.
◇ "민사의 형사化…'고의적인 악행'으로 몰고가는 상황 발생"
이처럼 민사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형사적인 조치를 통해 피해배상을 받는 것을 '민사의 형사화'라고 한다. "그렇게 전화해도 받지 않고 요리조리 피하던 사람이 막상 형사고소를 당하고 수사기관에서 연락하니 바로 전화 오더군요"라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하는 의뢰인들이 많다. 이런 사회풍토 때문에 변호사로서 상담을 할 때 참으로 곤혹스러운 순간도 많다. 사건 내용을 봐서는 금전적인 채무불이행 사건이라서 민사적인 조치를 통해 채권을 회수하면 되는 사건인데도, 의뢰인은 어떻게든 형사적으로 '엮을 수 있는 방법'을 구해 달라고 요구한다.
민사는 상대방이 돈을 갚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 자체'에 집중한 뒤 돈을 갚을 것을 청구하는 방식이라면, 형사는 '돈 갚을 의사나 능력이 없는데도 돈을 빌려 간 과거의 무책임한 행동'에 집중한 뒤 '당신 잘못했소'라는 식으로 비난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방식이다. 분명 민사와 형사는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다.
돈을 빌렸다가 상황이 좋지 않아 갚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형사적으로 '엮기' 위해선 상대방이 처음부터 '고의'로 나쁜 마음을 먹고 악행을 저질렀다는 전제 하에 논리를 구성해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마음이 불편한 경우가 많다.
'설마 상대방이 그렇게 나쁜 마음을 먹고 처음부터 접근한 건 아니지 않나요?'라고 의뢰인에게 조심스럽게 반문하면 의뢰인들은 "그걸 어떻게 단정할 수 있나요? 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 사람은 처음부터 나쁜 마음으로 접근했던 것이 분명해요. 진실은 아무도 모르죠. 일단 최대한 나쁜 놈인 것처럼 서류를 꾸며 주세요. 진실은 수사기관에서 밝혀줄 겁니다"라면서 어떻게든 형사적으로 처벌이 가능하도록 얘기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한다.
◇ 진짜 진실은 뭘까
일단 변호사로서 의뢰인의 요청을 거절하기는 힘든게 사실이다. 의뢰인의 요청에 따라 상대방을 '본래부터 나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에 돌입한다.
의뢰인과 상대방 사이에 있었던 세세한 일들을 모두 정리한 다음, 그 일들 하나 하나가 사실은 상대방의 '치밀한 나쁜 의도'하에 계획적으로 실행한 것이라는 식으로 논리를 구성해서 고소장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나 자신도 그 얘기에 빨려들어가면서 스스로 설득력(?)을 갖는다. 내가 쓴 시나리오에 스스로 설득이 되는 셈이다.
고소장 초안을 작성한 다음 의뢰인과 계속 읽어보면서 어떻게 하면 상대방이 좀 더 나쁜 사람으로 보이게 할 수 있는지 예리하게 다듬어 간다. 의뢰인은 만족스런 얼굴로 고소장을 살펴보곤 "변호사님, 감사합니다. 이제 그 사람에게 세상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제대로 보여주겠습니다"라면서 자신만만한 얼굴로 고소장을 손에 들고 수사기관으로 향한다.
의뢰인이 생각하는 진실, 상대방이 생각하는 진실, 그 두 사람이 생각하는 진실과는 또 다른 진실, 수사기관에 의해 밝혀질 진실. 과연 무엇이 진짜 진실일까?
"이거 말이죠, 무조건 형사로 좀 엮어 주세요"라는 의뢰인은 오늘도, 내일도 끊임없이 변호사 사무실 문을 두드리고 있다.
'뚜벅이 변호사'·'로케터'로 유명한 조우성 변호사는 머스트노우 대표로 법무법인 태평양을 거쳐 현재는 기업분쟁연구소(CDRI)를 운영 중이다. 베스트셀러인 '내 얘기를 들어줄 단 한사람이 있다면'의 저자이자 기업 리스크 매니지먼트 전문가다.
이 기사는 더엘(the L)에 표출된 기사로 the L 홈페이지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더 많은 기사를 보고 싶다면? ☞ 머니투데이더엘(the L) 웹페이지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