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년 전 오늘…추악한 철덩어리 '파리의 자부심'으로 탄생

박성대 기자
2016.03.31 05:45

[역사 속 오늘]프랑스혁명 100주년·세계박람회 기념탑 '에펠탑' 완공

에펠탑 전경./사진=위키피디아

1889년은 프랑스 대혁명이 100주년 되는 해였다. 프랑스는 대혁명을 기념하는 동시에 자국 산업기술력을 전세계에 과시하기 위해 파리 세계박람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앞서 세차례 세계박람회를 유치해 국제적 위상을 높였었던 프랑스는 네번째 행사에선 특별히 기념할만한 조형물이 필요했다. 프랑스는 이전까진 건축물 재료로 잘 쓰이지 않았던 철을 이용해 상징물을 짓기로 했다.

건립계획과 설계도가 나오자 파리 시민들은 상징물의 이미지에 경악했다. 1만5000개의 금속덩어리를 250만개의 나사못으로 연결하는 무게 7300톤, 높이 300.5m의 거대한 철골탑 구조물이 파리 특유의 분위기를 망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많은 파리 시민이 건립 반대 시위에 나섰고 정부는 20년 후 철거를 약속하고서야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 철골 구조물은 뉴욕 '자유의 여신상' 내부 강철프레임과 니스 천문대 가변 돔을 설계하면서 당시 '강철의 마술사'로 불렸던 철교 건설전문가 귀스타브 에펠의 손에 맡겨졌다. 1887년 1월28일 공사가 시작됐고 25개월간의 공사 끝에 127년 전 오늘(1889년 3월31일) 완공됐다.

탑은 건축가의 이름을 따 에펠탑으로 명명된다. 1889년 파리 세계만국박람회 당시 600만명이 관람한 에펠탑은 당시 기술자들에겐 '과학과 산업의 승리'라는 극찬을 받았다. 당시 세계 최대높이의 건축물이기도 했다.

1888년 7월 공사중인 에펠탑./사진=위키피디아

하지만 예술가·지식인들에겐 파리의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추악한 철덩어리' 등의 비판을 받는다. 특히 반대를 심하게 했던 소설가 모파상은 식사 약속이 있으면 반드시 에펠탑에 있는 식당을 찾았는데 그 이유에 대해 "파리 어딜가나 그 괴물이 보이지 않는 것이 없는데 이 안에서 유일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에펠탑은 존속 조건이었던 20년 후 해체 위기에 맞닥뜨린다. 또다시 에펠탑에 대한 논란이 벌어졌으나 철탑에 세워진 전신용 안테나 덕분에 존속이 정해진다. 무선통신에 기여하고 있는 에펠탑을 헐어버릴 수 없게 된 것.

그렇게 철거의 위기를 벗어난 에펠탑은 시간이 지나면서 파리시민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 명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파리시민 입장에선 눈만 뜨면 보이는 건축물에 익숙해지면서 애정을 갖게 됐다는 분석이다.

결국 에펠탑은 '파리의 자부심' '파리의 가장 사랑스러운 여인'으로 불리며 프랑스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널리 알려지면서 반드시 찾고 싶은 관광명소 상위권에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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