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년 전 오늘…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 태어나다

박성대 기자
2016.05.12 05:59

[역사 속 오늘] 英 간호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탄생… 국제 간호사의 날

나이팅게일의 명함판 사진./출처=위키피디아

'보라, 저기 허술한 집에 어두운 방에서 방으로 램프를 든 젊은 여인이 천사와 같이 지나는 것을. 병사들은 구원의 꿈을 보는 듯 어스름한 벽에 비치는 그 그림자에 입을 맞춘다.'

미국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가 영국의 한 간호사에게 바친 시의 일부다. 19세기 영국에서 가장 유명했던 이 사람은 바로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다.

나이팅게일은 196년 전 오늘(1820년 5월 12일) 이탈리아 북부 피렌체에서 영국 귀족가문의 딸로 태어났다. 플로렌스라는 이름은 피렌체의 영어식 지명이다. 당시 영국 상류층 여성들은 나이가 차면 사교계에 나가 귀족자제를 만나서 결혼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기존의 여성상을 거부했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게 헌신하기 위해 간호사가 되겠다는 뜻을 부모에게 전달한 것. 집안이 발칵 뒤집힌 건 당연지사였다. 당시 영국에선 간호사를 하녀나 매춘부와 비슷한 수준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가 집안의 반대와 사회의 편견을 뒤로하고 간호사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10년. 33살에서야 독일의 병원에서 4개월간 훈련을 받아 정식 간호사가 될 수 있었다.

1854년 크림전쟁이 터지자 나이팅게일은 이스탄불의 위스퀴다르로 38명의 간호사를 이끌고 종군을 자원했다. 전쟁터에서 그는 '백의의 천사'로 거듭났다.

매일 밤 그는 램프를 들고 직접 회진하면서 환자들을 돌봤다. 헌신적인 돌봄에서 더 나아가 체계적인 기록과 통계를 가지고 간호업무 전반도 개선시켰다. 간호사 훈련에서 병원 관리·보급·급식까지 통계수치를 들고와 개선을 요구하는 나이팅게일을 포기하게 할 수 있는 군 관계자는 없었다.

헌신적인 봉사와 체계적인 개선 덕에 그녀가 도착하기 전 42%에 달하던 야전병원 부상병 사망률은 5개월 만에 2.2%로 떨어졌다. 그를 단순한 간호사가 아닌 유능한 통계학자, 행정가로도 평가받게하는 대목이다.

병사들은 그를 '램프를 든 여인(The Lady with the Lamp)'로 칭했고, 언론을 통해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명인사가 됐다. 전쟁 후 그가 귀국했을 때 나이팅게일은 빅토리아 여왕 다음으로 유명한 여성 대접을 받았지만, 간호직 확립과 의료보급에만 헌신한다.

그는 1860년 세계 첫 간호학교인 나이팅게일 간호 학교(현재 킹스 칼리지 런던의 일부)를 설립하고, 간호전문서적을 펴내면서 간호사를 전문직업으로 인식시키는 데도 큰 역할을 한다. 임종을 3년 앞둔 1907년 그는 에드워드 7세로부터 여성 최초로 메리트 훈장(Order of Merit)을 수여받기도 한다.

현재 전 세계 모든 간호학도들은 윤리와 간호원칙의 내용을 담은 '나이팅게일 선서'를 행한다. 그가 태어난 5월 12일은 간호사의 사회 공헌을 기리는 '국제 간호사의 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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