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 협박' 의혹으로 고발당했던 최경환·윤상현 새누리당 의원과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세 사람은 지역구 출마를 포기하라며 김성회 전 의원을 협박했다는 의혹으로 수사선상에 올랐는데요. 이 과정에서 "대통령의 뜻"이라는 발언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돼 파문이 일기도 했습니다.
검찰은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세 사람의 발언을 협박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김 전 의원에게 정치적인 조언을 건넸을 뿐, 출마를 포기하라는 강요는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법조계 안팎과 야권에선 수사결과에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검찰이 '친박 실세'인 세 사람을 봐준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번엔 사건 경과를 살펴보면서 논란의 이유를 짚어보려 합니다.
'친박 맏형'과 맞붙자 실세들 전화…"까불지 말라니까"
사건은 20대 총선을 세 달여 앞둔 지난 1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김 전 의원은 18대 총선에서 당선됐던 경기 화성갑에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등록합니다. '친박계 맏형'으로 불리는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도 같은 지역구에서 출사표를 던집니다. 이때 김 전 의원은 최·윤 의원, 현 전 수석과 전화를 합니다. 그리고 신설 지역구인 화성병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고배를 마십니다.
이후 김 전 의원과 세 사람 사이에 오갔던 대화 내용이 녹취록으로 공개됩니다. 녹취록에서 윤 의원이 "까불면 안 된다니까"라고 하자 김 전 의원은 "너무 심한 겁박을 하는 것 아니냐"고 합니다. 이에 윤 의원은 "형이 얘기한 대통령 뜻을 가르쳐 준 것"이라며 "정무수석하고 경환이 형하고 나하고 대통령, 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말합니다.
윤 의원은 또 "내가 별의별 것 다 갖고 있다. 형에 대해서"라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이후 최 의원도 "감이 그렇게 떨어지면 어떻게 정치를 하냐"고 거듭니다. 김 전 의원이 "그게 VIP(대통령) 뜻이 확실히 맞냐"고 하자 최 의원은 "그럼, 그럼"이라고 합니다.
현 전 수석은 "저와 약속하고 얘기한 것은 대통령한테 약속한 것과 똑같은 것 아니냐"고 말합니다. 김 전 의원이 "생각해 볼 시간을 좀"이라고 하자 "생각할 게 뭐가 있습니까"라고 다그칩니다.
녹취록 공개 후 세 사람은 협박과 공천 약속으로 김 전 의원의 출마를 포기시켰다는 의혹에 휩싸였습니다. 참여연대 등은 지난 7월 검찰에 진상을 밝혀달라며 고발장을 냈고,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검사 이성규)가 수사에 나섰습니다.
검찰, "협박 아닌 조언" 결론…최경환·현기환 소환도 없이 '무혐의'
검찰은 김 전 의원이 협박을 당한 것이 맞는지, 세 사람이 공천을 약속했던 것이 맞는지 여부를 중점적으로 수사했습니다. 공직선거법은 후보자가 되려는 자를 협박하거나 당내 경선과 관련해 이익을 제공, 약속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검찰은 녹취록 파일을 확보하고 김 전 의원을 소환 조사했습니다. 그런데 통화에서 "너무 심한 겁박을 하는 것 아니냐"고 했던 김 전 의원이 검찰에서 "편하게 얘기하던 중 나온 발언이고, 협박으로 느끼지 않았다"고 진술했다고 합니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협박이 아닌 조언이었다는 결론을 냈습니다.
검찰은 세 사람이 다른 지역구 출마 대가로 공천을 약속했다는 의혹도 사실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녹취록에 "경선하라고 해도 우리가 다 만들지. 친박 브랜드로", "옆에 보내려는 건 우리가 그렇게 도와주겠다는 것이고" 등 발언이 있었는데도 말이죠. 검찰은 "친분이 있는 관계에서 인접 지역구에 출마하면 도와주겠다는 취지로 확인됐다"라며 "상호간 협의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김 전 의원을 제외한 사건 당사자 중 검찰에 소환된 인물은 윤 의원뿐입니다. 검찰 관계자는 "윤 의원은 김 전 의원과의 통화내용이 가장 많아 소환한 것"이라며 "(최 의원과 현 전 수석에 대해서는) 통화내용이 확보돼 있고 발언 취지만 확인하면 돼 서면조사를 실시했다"고 했습니다. 최 의원, 현 전 수석은 검찰에 얼굴 한 번 비추지 않고 무혐의 처분을 받은 것이죠.
고발장을 접수하면 고발인을 가장 먼저 불러 조사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검찰은 참여연대 측도 조사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처음부터 수사의지가 없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얼마나 겁먹었으면" 진술 신빙성 의문…검찰, 또 '봐주기 수사' 논란 자초
수사결과 발표 후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특히 세 사람의 발언은 조언과 거리가 멀어보인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녹취록에서 이들은 격앙된 어조로 "서청원 전 대표 가는 지역은 안 가겠다 저한테 그랬습니까 안 그랬습니까", "대통령이 뒤에 있다니까"라고 압박합니다. 더욱이 김 전 의원은 2013년 10·30 재보궐 선거에서도 서 의원에 밀려 공천받지 못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도 청와대 개입설이 불거졌었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이런 상황들을 고려했을 때 그의 진술을 그대로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노 의원은 지난 13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김 전 의원은 대통령 뜻에 따르지 않으면 생길 손해에 대해 공포심을 갖고 있었다"며 "얼마나 겁을 먹었으면 검찰에 와서 협박이 아니라고 하겠냐"고 했습니다. 그는 "친박 실세들이 당 대표, 국회의장까지 거론되던 서 의원을 위해 대통령을 판 것"이라며 "검찰이 공정하게 수사했다고 국민들이 믿어줄 것 같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의문은 검찰이 정권 입맛에 따라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논란으로 이어집니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선관위가 허위사실 공표로 새누리당을 고발한 사건 중 절반이 무혐의로 끝났다"고 지적했습니다. 같은당 이춘석 의원은 김수남 검찰총장을 향해 "이번에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새누리당 인사 중 대다수가 비박이라고 하는데 우연인가"라고 물었습니다. 김 총장은 "누가 친박인지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선거구 획정부터 시끄러웠던 20대 총선을 앞두고 검찰은 선거사범을 엄단하겠다며 이렇게 공언했습니다. "수사 대상자의 소속 정당이나 지위고하를 떠나 범죄행위 자체만으로 판단해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어떤 시비도 남기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총선 수사가 마무리된 지금,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시비가 일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