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검사(45·사법연수원 33기)의 폭로로 촉발된 미투(#me too) 운동이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사실까지 폭로되며 사회 전체에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피해자 전부가 여성으로 드러나며 오랫동안 감춰져 있던 남성들의 원시적 여성관이 문제시되지만 미투 운동을 남녀 구분 없이 모든 약자의 탈출구로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약자라서 신음하는 구조, 남·녀 구분 없어= 피해자가 고개 숙이고 가해자는 오히려 당당한 사회 구조 속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고 고통 받는 것은 여성만이 아니다. 권력 관계상 을의 입장에서 성폭력을 당하는 남성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지난해 발표한 '남녀 근로자 모두를 위협하는 직장 성희롱 실태'에 따르면 "최근 6개월 이내 성희롱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한 남성이 25%에 달했다. 이들은 직장 상사로부터 △본인을 성적 대상으로 삼는 음담패설 △부부 및 연인관계에 대한 성적 질문 △성적인 관계 강요 등의 피해를 입고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
직장인 조모씨(27)는 "업무 차 영업소를 방문할 때 마다 여성 관리인이 '미혼의 젊은 남자가 와서 좋다'며 여자 친구와의 관계 등을 물어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며 "불쾌한 기색이라도 보이면 '농담인데 남자답지 못하다'고 핀잔을 줘 어쩔 수 없이 넘어갈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유정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원은 "사회적 통념과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통념 때문에 밝히기를 꺼려할 뿐 실제로 남성들의 성폭력 피해도 많다"고 설명했다.
우월적 권력을 가진 남성에게 동성 간 성폭력을 당하기도 일쑤다. 여성가족부의 '2015년 성희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직장 내 남성에게 성희롱을 한 가해자의 절반이 남성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군대 문화의 영향으로 성폭력 가해자도 피해자도 성폭력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최근 미투 열풍에 성추행 폭로가 잇따르던 중 남성 피해자의 미투 고백이 등장하기도 했다. 지난달 19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연극을 전공하는 남성이 2014년 남성 교수에게 강제추행을 당하고 성행위를 강요당했다고 폭로했다.
◇모든 피해자를 위한 것이 미투의 본질=전문가들은 미투 운동이 건전하게 확산되기 위해서는 남자, 여자가 아니라 모든 피해자인 '약자'를 위한 운동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남녀 모두를 보호하는 성희롱 예방 정책과 함께 사회 전반적인 인식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유정 연구원은 "성폭력 피해 문제를 단순히 남자와 여자의 대립 구도로 보는 것은 위험하다"며 "권력·신체적 차이·집단과 소수에서 오는 힘의 불균형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모든 피해자를 아우를 수 있다"고 말했다.
고강섭 한국청년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미투 운동이 긍정적인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성폭력 문제를 성별투쟁이 아닌 권력위계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 연구원은 "미투 운동은 그 자체로 의미 있지만 최근 남녀 갈등 양상으로 치닫는 것 같다"며 "미투 운동은 남녀 구분 없이 피해자를 보듬고 서로 공감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말했다.
이어 "권력에 신음해온 여성이나 고정된 성역할에 성폭력을 참아 온 남성이 거리낌 없이 자신의 피해를 말할 수 있게 약자에 대한 공감을 확산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