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먹인 뒤 성폭행을 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던 남성 2명이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사건으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전주지법 제2형사부(부장판사 박정대)는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특수준강간) 혐의로 기소된 두 명의 20세 남성들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고 지난 4일 밝혔다.
이들은 전주의 한 공원에서 '왕게임'으로 생일이었던 여자 후배에게 술을 먹인 뒤 만취하자 추행과 성폭행을 한 혐의를 받았다.
결과적으로 피고인 2명이 구속상태에서 풀려나게 된 판결 결과에 대해 공분이 높지만 법전문가들은 사건 개요와 판결문을 살펴보면 봐주기 판결은 아니라는 평가다. 법조인들은 일반적으로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의 형량이란 판단이다.
판사가 밝힌 집행유예 선고의 주된 이유는 '초범'인 점과 피해자와의 '합의' 그리고 '상당 기간의 충분한 구금'이다.
◇성폭력 사건에선 '합의 여부'가 중요한 양형 요인
변호사들은 그 중에 특히 피해자와의 '합의'가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됐을 것이라고 봤다. 성폭력 사건에서 상당히 중요한 양형요인으로 작용하는 게 '합의 여부'라는 것이다.
이필우 변호사(입법발전소)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은 이런 종류의 사건에선 기본 형량인데 지난해 8월 사건인 점을 고려하면 최대 구금기간도 6개월을 안 넘었던 셈이라 '충분한 구금'을 주된 양형사유로 볼 수 없고 '합의'가 가장 중요한 양형사유가 됐을 것"이라 설명했다.
성폭력 사건에선 '범행 인정'과 함께 '합의'를 했다는 점은 수사·재판 과정에서 주요 판단 근거로 쓰인다. 반대로 범행을 부인하면서 피해자와 합의를 하지 않는 경우엔 수사단계에서 '구속'은 물론이고 재판에서 '유죄'와 함께 징역형 실형이 나오는 비율이 급격히 높아진다.
◇"'곰탕 성추행'사건, 합의했다면 벌금형으로 1심서 끝났을 것"
지난해 12월 결국 대법원에 의해 '유죄' 판단이 내려졌던 일명 '곰탕 성추행'사건이 대표적이다. 일관되게 무죄를 주장했던 최모(39)씨는 1심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었다. 검찰이 벌금 300만원을 구형했음에도 판사가 훨씬 무거운 징역형의 실형 선고를 내린 것이다. 2심에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으로 구속상태에선 벗어날 수 있었지만 대법원도 결국 2심 결론을 그대로 받아들여 '유죄'라고 판단했다.
변호사들은 최씨가 차라리 유죄를 인정하고 피해자와 합의했다면 1심에서 법정구속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본다. 김운용 변호사(다솔 법률사무소)는 "성폭력 사건에선 '무죄'입증이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무죄 주장을 하면 상당한 리스크를 안는 셈"이라며 "판사의 성향이나 사건의 난이도를 살펴서 '무죄' 입증이나 설득이 어렵다는 판단이 들면 변호사들은 차라리 '유죄'를 인정하고 피해자와 합의를 택하도록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맞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특히 무죄 증거가 마땅치 않은 경우엔 재판부가 피해자의 주장을 좀 더 고려해주는 '성인지감수성'이 갈수록 판단요소로 중요시 여겨지는 성폭력 사건만의 특별한 사정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합의 여부'에 의존하는 판결 관행이 '무고죄' 불러
성폭력 사건에서 '합의 여부'는 중요한 요소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성폭력 사건은 간혹 '강제성' 여부를 두고 다투거나 피고인이 아예 범죄를 인정하지 않고 별다른 증거가 없을 경우엔 유무죄 판단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엔 판사가 '무죄'판단에 부담을 느끼는데 피고인이 '유죄'를 인정하면서 피해자와 합의를 이루면 초범의 경우엔 대부분 '집행유예'로 종결된다는 게 법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법조계 일각에선 '합의 여부'를 주된 양형사유로 보는 것이 성폭력 사건에서 유독 많은 '무고 범죄'를 불러 온다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최근 몇년 간만 해도 합의금을 노렸던 '성폭행 무고' 사건이 여러 명의 유명 남성 연예인들을 괴롭힌 바 있다. 성폭행범으로 몰렸던 김흥국, 엄태웅, 이진욱, 이민기, 박유천 등이 결국 혐의를 벗었지만 유무형의 상당한 피해를 입은 바 있다.
한 변호사는 "합의라는 게 피해자의 구제수단으로 상당히 인정되기 때문에 법원도 합의여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다만 그에 비례해서 합의금을 노린 무고 범죄도 적다고는 할 수 없고 합의를 이유로 가벼운 형량의 유죄로 결론난 상당수의 성폭력 사건은 실제론 무죄였을 수 있다는 점은 법원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연예매체 디스패치는 지난 4일 국회의원 출신 강용석 변호사가 2015년 블로거 '도도맘' 김미나씨와 공모해 술자리 폭행을 성폭행 사건으로 조작해 증권사 고위 임원이었던 피의자에게 억대의 합의금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