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누더기 돼버린 기부 관련 법부터 고쳐야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
2020.06.17 06:30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 /사진=머니투데이

비영리는 모세혈관 같다. 모세혈관의 일부가 상한다고 목숨이 위험하지는 않으나 피가 흐르지 않는 부위는 죽는 것처럼,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사회 구석구석에서 필요를 채운다. 비영리는 다양하다. 초중고 대학 교육, 연구, 예방, 헌혈, 보건의료, 자원봉사, 취약계층 지원과 복지, 기업 및 정부감시 등 다 열거하기도 어렵다. 쉽게는 어려운 이들을 돕는 일이고 고차원적으로는 부조리한 사회 제도 개선과 정책 제언에도 역할이 있다.

비영리 활동이 잘되려면 인력과 예산은 필수다. 대부분 기부금과 국가나 기업의 지원 등으로 충당한다. 불안정한 재정구조는 인력공급에도 영향을 미쳐 일을 제대로 하기 어렵게 하고 단체의 책무성을 취약하게 한다.

우리나라 현실을 보면, 몇몇 대형 단체를 제외하고 평균적으로 비영리 활동가들은 최저임금 수준 안팎에서 열정과 헌신을 붙들고 일한다. 근무환경이 열악하니 일을 연마하기 어려워 세련됨이 떨어지고 돈을 모을 여력도 딸리며 이는 다시 자원 부족으로 돌아오니 악순환이다.

이런 현실에서 비영리가 돈버는 일에 관심이 없는 것은 미덕이 아니다. 앞선 세대에 쌓아둔 것이 없는 신생 단체는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조건이 열악하다. 오직 사람의 힘으로 일하는 비영리 예산에 인건비 비중이 높은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며, 예산항목만으로 잘잘못을 가릴 수 없다는 것은 공인회계사들이 더 잘 안다.

기부금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재무투명성이 단골메뉴로 등장하지만 투명성은 이런 현실에 별 도움이 못된다. 투명성은 단체가 신뢰받기 위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자세로 스스로 겸비할 일이지 남이 강제하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기부자 개개인이 단체를 못 믿겠다며 장부공개를 요구할 정도로 신뢰를 잃었다면 차라리 문을 닫는 것이 나을 수 있다.

최근 기부금품법 시행령에 기부자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장부를 요구할 권리를 법령에 포함시킨다고 하는데, 이는 불신이 전제가 되는 일이다. 정부가 할 일을 하지 않고 개인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며 행정비용만 가중시킨다.

비영리 단체가 기부금을 받는 목적이 공익실현이니, 본연의 일을 잘 함으로써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이 핵심이며 이것이 책무성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건강한 관행을 만들어 내기 위한 장치로서 ‘국민들의 상식적 이해를 담은 원칙과 이를 구현할 제도를 담은 살아있는 법’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기부 관련 법들은 용어와 개념이 제각각이고 고무줄 같아서 법해석이 자의적이고 임의적으로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공정하지 않거나 비현실적인 내용이 많다. 정부 부처 간에도 원칙이 합의되지 않아 그 부담은 단체들에게 돌아간다. 이런 상황에서 단지 투명성은 큰 도움이 못된다.

법이 구현되려면 적절한 형식과 절차가 함께 마련되어야 하고 일의 책임을 갖는 부서와 예산이 있어야 한다. 법을 100개 만든다해도 실행체계를 담지 않은 법은 이름만 있을 뿐 현실에는 아무 영향을 주지 못한다.

지금 필요한 일은 너무 오랫동안 방치되어서 누더기처럼 되어버린 기부관련 법제도를 근본적으로 고쳐서 비영리 현실을 반영한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아울러 공익과 기부를 다루는 전문성 있는 공공역할자들을 세움으로써 꼬일대로 꼬인 비영리 제도를 단순명쾌하게 정리해주어 모두가 쉽게 이해하고 따라가도록 안내하는 일이다. 그렇게 하고 나서도 문제가 되는 곳이 있다면 일벌백계를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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