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의 한 빌라에서 숨진 채 발견된 3세 여아의 '친모'로 밝혀진 A씨(49)와 그의 남편이 "아이를 낳은 적이 없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정확도 99.9%로 알려진 유전자(DNA) 검사 결과가 4번이나 일치했음에도 이를 부정한 셈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A씨가 임신했을 당시 '임신거부증'을 앓고 있던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됐다. 임신거부증은 임산부가 자신의 임신을 인지하지 못하는 증상이다.
A씨 남편 B씨는 최근 MBC와 SBS 등 방송에 출연해 "아내는 3년 전 아이를 낳은 적이 없다"며 A씨의 출산 추정 시점에 찍은 사진과 옷, 결백을 주장하는 편지를 공개했다.
B씨는 A씨의 사진에 대해 "출산했다는 시점의 한 달 반 전 모습인데 만삭이 아니다. 절대 출산하지 않았다"며 "아내는 몸에 열이 많아 집에서 민소매를 입고 있는데, 내가 임신을 모른다는 게 말이 되냐"고 반박했다.
구속수감된 A씨도 남편에게 보낸 편지에서 "있지도 않은 일을 말하라고 하니 미칠 노릇"이라며 "하늘이 알고 땅이 알아. 진짜로 결백해. 결단코 나는 아이를 낳은 적이 없어"라고 적었다.
그러나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숨진 여아와 A씨가 친자관계일 확률이 99.9999% 이상이라고 일축했다. 경찰은 지난 17일 "DNA 검사를 세 차례 진행했고 샘플 채취도 숨진 여아의 신체 3곳에서 진행했다. A씨가 재검사를 요청해 다시 했는데도 역시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며 "샘플이 바뀔 가능성이나 검사 결과가 틀릴 확률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A씨가 출산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향후 재판 형량 결정 과정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A씨가 아이를 낳은 적이 없다면 영아 바꿔치기 자체가 불가능해서다. 오리무중인 친부 정보, A씨 딸이 출산한 아이의 행방 등에 대한 추궁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일각에서는 A씨에게 실제 자신이 출산하지 않았다는 망상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산모가 자신의 임신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임신으로 인한 신체 변화도 나타나지 않는 '임신거부증'을 앓았던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다.
임신거부증(Pregnancy denial)은 원치 않는 임신으로 고통을 느끼는 여성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임신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상상임신의 반대 개념으로,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서 임신 사실을 회피하려는 일종의 방어기제다. 혼외정사 혹은 성범죄 피해로 인한 임신으로 무의식적으로 거부하는 경우나 아이를 더 낳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부담감 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
놀라운 것은 몸의 변화다. 임신부가 임신을 하지 않았다고 믿으면 태아가 숨어서 자라기도 한다. 자궁이 배 앞쪽으로 둥글게 커지는 것이 아니라 위아래로 길게 커지거나 척추에 들러붙는 경우도 있다.
태아는 태동도 없이 아홉 달 동안 엄마에게 방해를 주지 않는 방향으로 성장한다. 막달까지 월경이 지속되는 경우도 일부 있다. 배가 별로 나오지 않고 입덧도 없다. 심지어 임신테스트기를 통해서도 임신이 확인되지 않는 사례가 많다.
임신거부증을 가진 산모의 경우 출산하더라도 '내 아이'라는 자각을 하지 못해 아기에 대한 모성애를 갖지 못한다. 이같은 증상은 살해 및 사체유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프랑스에서는 임신거부증 여성을 정신질환자로 인식해 처벌하지 않고 치료를 시키고 있다.
임신거부증을 최초로 연구한 나라는 프랑스다. 프랑스 '임신거부증협회'가 2005년 유럽 내 산모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실제 유럽 대륙에서는 연간 350여명의 산모가 임신거부증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산모 2500명 중 1명 꼴로 출산하기 전까지 자신의 임신사실을 전혀 자각하지 못한다는 결과도 나왔다.
2014년 영국의 당시 19세 여성은 갑작스러운 복통을 느낀 뒤 9시간 만에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았다. 그는 당시 "임신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몸에 특별한 이상증세도 없었다"고 말했다. 아기를 출산하기 3일 전까지 농구 선수로 출전한 브라질 여성도 있다.
국내에서는 2006년 ' 서래마을 영아 살인사건'으로 임신거부증이 알려졌다. 당시 한국에 거주하던 프랑스 여성 베로니크 쿠르조는 영아 두 명을 살해한 뒤 시신을 냉동고에 넣어 2년 넘게 방치했다. 그는 경찰에 "내가 낳은 아이가 아니라 내 뱃속에서 나온 신체의 일부인 무언가를 죽인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2010년 경남 김해의 40대 여성도 출산 4시간 만에 아기를 비닐봉지에 담아 거주지 근처 숲속에 유기했으며, 당시 경찰 조사에서 "내가 낳았지만 내 아이가 아니라서 버렸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저널리스트인 가엘 게르날레크 레비는 '나는 임신하지 않았다'라는 책에서 거부된 임신에 대한 예방책 마련을 논했다. 그는 모성학 전문의의 말을 인용해 "영아살해 여성들을 감옥에 가두는 이유는 여론을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라며 "의학적·사회적 측면에서 볼 때 그렇게 해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했다. 또 임신거부증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한편 경찰은 A씨는 미성년자 약취 혐의에 사체유기미수 혐의를 추가해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숨진 여아의 친부 확인을 위해 여아가 태어났던 시기에 A씨와 통화했던 기록이 있는 남성들을 대상으로 DNA 검사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