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경찰 '구내식당' 발길도 뚝…못먹는 식권 강제 구매하는 경찰들

김성진 기자
2021.12.08 04:30

#서울의 한 경찰서에 속한 경찰관들은 매달 식권을 14장씩 의무구매한다. 식권 한장당 가격은 4500원으로 한달에 6만3000원이면 그리 큰돈은 아니지만 경찰관들 사이에서 "아깝다"는 반응도 엿보인다. 근무 특성상 식권을 모두 쓰지 못할 수도 있는데 남는 식권은 그대로 소멸된다는 것이다. 한 경찰관은 "식권을 의무구매하는 건 부당하다"고 말했다.

전국에 식권을 의무구매하는 경찰서는 많다. 내부적으로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오지만 관계자들은 "불가피하다"고 설명한다. 서울시내 31개 경찰서 중 수서경찰서만 구내식당을 외부업체에 위탁하고 있고 30개서는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구내식당은 정부의 예산 지원 없이 자체 수익으로 운영되는데 코로나19(COVID-19) 때문에 민원인들의 발길도 끊겨서 구내식당 재정은 갈수록 나빠지는 상황이다.

적자 쌓이는 구내식당들...직원 퇴직금 못 챙겨줄 수도
/사진=게티 이미지뱅크

경찰서에서 구내식당 식권 구매를 의무화하는 이유는 구내식당의 만성적 적자 때문이다. 서울 뿐아니라 지방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강원도의 한 경찰서는 한달에 12장씩, 경상남도의 한 경찰서는 10장씩 등 식권 의무구매를 하고 있다. 구내식당의 적자가 커져 감당하기 힘든 곳부터 하나둘씩 식권 구매 의무화를 결정하는 양상이다.

7일 머니투데이가 이은주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 받은 '구내식당 운영현황'자료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소속 31개 경찰서 중 10개 경찰서의 구내식당은 작년보다 올해 적자가 늘었다. 적자가 1000만원 이상 늘어난 경찰서도 4곳이었다.

구체적으로 종로경찰서의 구내식당 적자가 2270만원, 관악경찰서는 1397만원, 도봉경찰서는 1124만원, 노원경찰서는 1015만원, 혜화경찰서는 969만원 늘었다.

경찰들은 구내식당이 '손해 보는 장사'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구내식당은 정부의 예산지원 없이 운영된다. 경찰은 경찰관들의 정액급식비를 월급에 포함해 지급했다고 본다. 익명을 요구한 경찰 관계자는 "구내식당에 정부 예산을 투입하면 경찰관들에 식비를 두번 지급하는 꼴"이라 설명했다.

식권과 매점, 자판기 수익만으로 재료비, 인건비 등을 감당하는 셈이다. 문제는 구내식당의 운영 목적이 '수익 창출'이 아닌 만큼 식권 한장의 가격이 너무 낮다는 데 있다. 지난 8월 기준 서울경찰청 산하 일선 경찰서 구내식당의 식권 가격은 3500원~5000원 수준이었다.

식권이 싸면 이용객이라도 많아야 하는데 구내식당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갈수록 줄어든다. 서울의 한 경찰서는 지난 8월 기준 하루 평균 식당 이용객이 180여명 수준이었다. 지구대와 파출소 인원을 뺀 경찰서 근무 인원(300명)의 60% 수준이다. 식당을 찾는 경찰관도 줄었지만 외부인의 이용이 막힌 영향도 크다. 코로나19가 퍼지기 전에는 민원인 등 외부인도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불가능하다.

경찰 관계자는 "평소 구내식당 이용객 중 경찰관과 민원인 비중은 4:1 수준이었다"며 "민원인 비중이 적지 않았는데, 이들 수요가 줄었으니 구내식당 수익도 줄었다"고 말했다.

경찰서들, 적자 줄이려 '안간힘'…"직원 퇴직금 못 챙겨주면 어쩌나"
/사진=뉴시스

쌓이는 적자를 보는 경찰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경찰 관계자는 "외상을 준 납품업체에 사정이 생겨 외상값을 물어줘야 하는 등 적자를 메워야 할 순간이 올 수 있는 것 아닌가"라며 "식당 직원들의 퇴직금도 정기적으로 적립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면 나중에 퇴직금을 주지 못할 수도 있다.

적자 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경찰 내에서는 '폭탄돌리기'라는 말도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구내식당은 경찰서 복지위원회가 운영하는데 복지위원회가 따로 마련하는 재원은 없다"며 "적자를 메꿀 순간이 와도 낼 돈이 없을텐데 그 뒷감당을 누가 하겠나"라고 말했다.

결국, 식권 의무구매는 적자를 줄일 고육지책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올해 적자가 2277만원 발생한 종로경찰서는 아직 식권 의무구매를 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매점이나 카페를 새로 연 것도 아닌데 오로지 구내식당 운영 과정에서 2000만원 상당의 적자가 발생했다. 종로경찰서는 결국 이번달 안으로 복지위원회를 열고 식권 의무구매를 실시할지 논의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코로나19로 민원인도 식당 이용을 못하고 경찰관들의 발길도 줄어서 적자가 났다"고 설명했다.

식권 의무구매 외에도 경찰서에서는 △식권 가격 인상 △운영기간 단축 등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남은 반찬을 포장판매하거나 수요일 점심은 라면으로 대체하는 경찰서도 있다. 경찰 관계자는 "수익은 바라지도 않고 현상 유지만 했으면 좋겠다"며 "그런데 식당 이용 인원이 계속 줄어드니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은주 의원실은 "경찰관들이 질 좋은 식사를 하고 식당 관계자도 불안에 떨지 않고 일하려면 구내식당 운영을 이대로 둬서는 안된다"며 "구내식당이 현행법상 복지시설로 규정된 만큼 기획재정부가 지원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경민 경찰청공무직노동조합 위원장도 "경찰이 경찰관들의 정액급식비를 월급에 포함해 지급했다 하더라도 구내식당 인건비와 공과금 등 운영비는 별도 지원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구내식당을 운영할 책임을 식권 의무구매 방식으로 경찰관에 전가하는 건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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