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안걸려" 고양이 불 태우고 '낄낄'...믿는 구석 있었다

김성진 기자
2022.02.13 16:31

VPN으로 IP 주소 바꿔...수사 걸림돌

지난달 28일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야옹이 갤러리'에는 고양이를 산 채로 불 태우는 영상이 올라왔다. /사진제공=동물권단체 카라

온라인 커뮤니티에 고양이를 산 채로 불 태우는 영상이 올라와 경찰이 작성자를 찾아나섰지만 작성자는 "안 걸릴 자신이 있다"며 느긋하다. 1년 전에도 경찰이 고양이 학대글 작성자를 추적했지만 소득 없이 수사를 종결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경찰 수사에는 한계가 있으니 커뮤니티의 책임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VPN으로 IP주소 바꾸는 학대범들...수사 어려울 수밖에
고양이를 산 채로 불태우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해당 영상을 올린 작성자는 다른 이용자들이 '걸리지 않겠나'라 반응하자 "나는 안 걸릴 자신이 있다"고 댓글을 남겼다./사진제공=동물권단체 카라

13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야옹이 게시판'에 고양이 학대 영상을 올린 작성자에 대해 정식 수사에 착수했다.

이 작성자는 고양이를 철제 포획용 틀에 가둬놓고 토치로 머리에 불을 붙였다. 학대 장면은 영상을 찍어 게시판에 올려졌다. 비판이 잇따르자 작성자는 "더 많은 고양이를 태워야겠다"고 새 글을 올렸다.

강남경찰서는 국민신문고에 민원이 수백건 접수되자 내사에 착수했다. 서울 마포경찰서에도 지난 9일 동물권단체 카라의 고발장이 접수됐다. 경찰은 디시인사이드 본사와 가까운 강남경찰서를 집중 수사 관서로 지정할 방침이다. 카라 관계자들은 전날 강남경찰서를 찾아 학대글 캡쳐본 등을 증거 자료로 제출했다.

경찰이 나섰지만 작성자는 '걸릴 걱정 없다'는 반응이다. 작성자는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학대 영상, 사진을 복사해 도용하자 자신이 원작자란 점을 증명하기 위해 새 글을 올리고 학대 사진을 찍은 구체적 시간과 장소를 공개했다. '걸리면 어떡하냐'는 반응이 나오자 작성자는 "저는 안 걸릴 자신이 있습니다"라고 댓글을 남겼다.

최민경 동물권단체 카라 활동가는 "인터넷에 고양이 학대 증거가 남아도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게 학습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에도 디시인사이드 게시판에 새끼 고양이 두 마리를 학대한 사진이 올라와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당시 작성자 엄벌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올라와 25여만 동의를 얻고 "엄중한 수사가 이뤄질 것"이란 정부의 공식 답변도 받았다.

사건을 수사한 서울 마포경찰서는 수사 한달만인 지난해 8월26일 사건을 종결했다. 당시 경찰은 작성자의 IP주소도 확보하지 못했다고 전해졌다.

고양이를 산 채로 불태우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해당 영상을 올린 작성자는 학대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더 많은 고양이를 잡아 태워야겠다"고 글을 올렸다./사진제공=동물권단체 카라

학대글 작성자는 보통 수사 기관의 추적을 피해 VPN(가상 사설망) 서비스로 자신의 IP 주소를 바꾼다. VPN 업체의 협조를 받으면 작성자의 실제 IP주소를 알 수 있지만 업체에 협조를 강요할 수는 없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상 전기통신사업자에 경찰의 자료 제공 요청에 협조할 의무는 있지만 거부할 시 처벌할 규정은 없다. 경찰 관계자는 "고객 보호를 명분으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VPN 업체가 많다"고 말했다.

통신 영장을 발부받을 수도 있지만 한계가 있다. 경찰 관계자는 "업체마다 정보 보관기간이 다르다"며 "IP주소를 파기한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외국 VPN 업체는 영장을 통한 수사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IP주소 추적 등 고도의 사이버 수사 기법이 요구되지만 이런 학대 범죄는 보통 경찰서 사이버경제수사팀이 아닌 경제범죄수사팀(경제팀)이나 지능범죄수사팀에 배당된다. 고양이를 불태운 사건도 마포경찰서와 강남경찰서 모두 경제팀에 배당됐다. 동물학대 사건은 사이버 범죄가 아니라는 취지다.

한 경제범죄팀 수사관은 "비둘기 학대 등 동물학대 사건을 주로 경제범죄팀이 맡는다"며 "일반적으로 경제팀 수사관이 사이버 수사기법을 알고 활용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경찰 수사력에 한계가 있는 만큼 커뮤니티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민경 활동가는 "커뮤니티에 학대글이 올라오면 미성년자도 열람하게 되고, 재유포될 가능성도 높다"며 "학대 글을 걸러내는 알고리즘을 개발하거나 '부적절한 글' 신고가 접수되면 즉각 대처할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학대 글이 올라왔다면 커뮤니티가 나서서 작성자에 대한 경찰 수사를 요청할 필요도 있다"며 "이외에도 게시자에 주의 조치를 내리는 등 커뮤니티 내부적으로 학대 대응 방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