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영하 1도 아래로 떨어진 27일 오전 11시쯤 서울 러시아 대사관 인근의 정동 분수대 앞에 국내 우크라이나인들 150여명이 모였다. 두 손이 얼어서 빨갷지만 이들은 정성껏 색칠한 포스터들을 넓게 폈다. 포스터들에는 "푸틴을 멈춰주세요" "평화는 협상 불가능합니다"라 적혀 있었다.
재한 우크라이나인 공동체는 이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우크라) 침공 규탄 집회'를 열고 "푸틴, 우크라에서 손 떼(Putin, Hands-off Ukraine)" "러시아 테러리스트들을 멈춰주세요(Stop Russian Terrorists)"라 외쳤다.
진행자가 "우크라이나"를 외치면 단체로 "뽀나두세(Ponad Oose·가장 소중한 것)"라 외치기도 했다.
우크라인들은 각양각색의 포스터를 만들어 러시아 침공을 규탄했다. 한 우크라인은 고국의 사랑하는 이를 떠올려 "푸틴이 가족과 친구를 죽이고 있다"고 적은 포스터를 들었다. 푸틴을 히틀러와 합성해 "대량 학살을 중단하라"고 적힌 포스터도 있었다.
공동체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1941년 독일이 유럽을 침공한 후 가장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러시아군은 우크라에 탄도 미사일을 발사하고 전투기와 탱크, 대포로 공격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미사일이 주민 거주 시설을 공격하기도 했다"며 "러시아는 국제법도 무시하고 유치원과 학교, 병원을 무차별 공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공동체는 "한국인들이 한국전쟁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피 흘린 것처럼 우크라도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키려 투쟁하고 있다"며 "한국인들의 지지를 호소한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 정부가 우크라를 지원해 줄 것도 절박한 마음으로 호소한다"며 "러시아를 상대로 적극적인 경제 제재를 한다면 우크라에 큰 힘이 될 것"이라 밝혔다.
공동체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에서 철수하기 전까지 매주 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열 계획이다.
입장문 발표 후 우크라인들은 정동 분수대부터 러시아 대사관까지 약 30분간 행진했다.
하지만 경찰의 통제에 막혀 대사관 약 70m 앞 큰길에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우크라인들은 "평화롭게 살고 싶어요(We want to live in peace)" "사람들 그만 죽이세요(Stop killing people)"라 외쳤다.
우크라인 여성 A씨는 '평화는 협상 불가능해'라 적힌 포스터를 들고 있었다. 국제관계 일을 맡아 한국에 2년간 살았다는 A씨는 고국에 만삭인 친구가 러시아 포격을 피해 3일째 집과 대피소를 오간다고 말했다. A씨는 "러시아와 관계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겠지만 지금 당장 공격을 맞출 즉각적인 조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데치아나 두라(29)씨는 '미사일 소리에 온 가족이 잠에서 깬대요'라 쓴 포스터를 들고 나왔다. 두라씨는 "가족이 수도 키예프를 빠져나왔지만 수시로 울리는 경보음에 불안해 한다"며 "당장 전챙을 멈춰야 한다. 국제 사회가 힘을 합치면 멈출 수 있다"고 말했다.
딸이 한국에 있어도 출국할 수 없는 우크라 여성의 사연도 들을 수 있었다. 간호사로 평생 일한 태티아나 조(27)의 친모(56)는 국가총동원령 때문에 출국이 금지됐다. 태티아나 조는 "매일 엄마 걱정에 신경안정제를 복용하는 중"이라며 "러시아는 당장 우크라에서 손을 떼라. 우리 땅이고, 우리의 터전"이라 말했다.
이들은 한국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를 비판했다. 고려인인 김올레(Kim Oleh·34)씨는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이라며 "약을 보내는 등 인도주의적 방법을 강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칼핀스키 보단씨도 "러시아가 오늘은 우크라를 공격했지만 내일 어딜 또 공격할지 모른다"며 "한국 정부가 러시아를 상대로 적극적인 경제 제재에 동참해 공격을 막는 데 협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반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전세계로 퍼지고 있다. 러시아에서도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50개 이상 도시에서 반전 시위가 일어나 전날까지 3일 동안 약 2700명이 구금됐다. 총리 자택이 있는 런던 다우닝가와 일본 도쿄의 주요 기차역, 대만 일대에서도 반전 시위가 일어났다.
국내에 있는 러시아인들도 이날 오후 4시부터 한 시간 동안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 집회'를 연다. 예상 참여 인원은 약 20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