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인터넷 포털에 '양궁 활'을 검색했다. 7만6000여개 상품이 떴다. 고를 수 있는 활과 화살도 그만큼 다양했다. 구매 과정은 간단했다. 연락처와 주소를 적으니 1분 만에 활과 화살 세트 구매가 가능했다. 허가증과 자격증을 인증하지 않아도 됐다. 누구나 돈만 내면 활, 화살을 살 수 있는 셈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을 보면 고등학생 양궁부가 활로 좀비들을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업계 얘기를 들으면 양궁도 살상력이 있다. 최근 제주도에서 누군가 개 한 마리를 활로 쏜 사고가 있었다. 하지만 현행법은 양궁 활 구매에 별다른 제한을 두지 않는다. '사람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며 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26일 오전 8시30분쯤 제주시 한경면 한 도로 옆에 숨 헐떡이는 개 한 마리가 발견됐다. 화살 하나가 개 허리를 꿰뚫고 있었다. 개는 말라뮤트 믹스견(잡종)이었다. 알래스카에서 썰매를 끌던, 가죽이 두꺼운 개다.
개는 허리뼈를 관통당했다.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다. 수술해 꺼내니 화살 길이가 약 70cm였다. 경찰은 개가 다친 정도를 볼 때 숙련된 궁사(弓師)가 일부러 개를 쏴 맞혔다고 보고 있다.
경찰은 대한양궁협회에 화살 정체에 대해 자문했다. 석궁 화살인지, 양궁 화살인지 수사 향방을 갈랐다. 현행 총포·도검·화약류 등 안전관리에 관한 법(총포화약법)은 경찰, 지자체 허가를 받아야 석궁을 사고, 쓸 수 있도록 했다. 만약 개를 맞힌 게 석궁 화살이면 최근 제주도에서 석궁 사용 허가를 받은 궁사로 용의자를 좁혀진다.
화살은 양궁용이었다. 해당 법상 양궁 화살은 구매 제약이 없다. 허가가 필요 없다. 누구나 인터넷에 들어가면 양궁 활, 화살을 주문할 수 있다. 경찰로선 용의자 특정이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화살에 지문도 없고, 양궁협회에 따르면 해당 화살이 특정 단체, 지역에서 쓰는 것도 아니었다.
경찰은 시민 제보를 받고, 목격자 탐문에 나섰다. 주말 동안 형사과, 수사과 가용 인원 50~60명을 총동원했지만 유의미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 폐쇄회로TV(CCTV)를 분석하니 개는 최소 2시간 몸에 화살을 꽂은 채 돌아다녔다. 이전 시간은 날이 어두워 개 동선이 더 파악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주변 탐문을 했지만 주민들이 '평소 못 보던 개'라 해 출신도 확인을 못하고 있다"며 "제주시 일대에 전단도 뿌리며 시민 제보를 받는 등 용의자 추적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머니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양궁 활, 화살 구매에 별도 규제가 없는 것은 총포화약법상 양궁이 살상 무기가 아니라 '스포츠용품'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석궁과 양궁의 가장 큰 차이는 발사원리에 있다. 석궁은 화살을 줄에 매기면 발사는 기계 장치가 한다. 미숙련자가 써도 살상이 쉽다.
반대로 양궁은 조준, 발사 모두 사용자 몫이다. 양궁협회 관계자는 "양궁은 석궁보다 파괴력이 덜하고 스포츠용"이라며 "배움의 과정이 필요해서 초보자가 구입해 바로 쓸 수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양궁 살상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특히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에 쓰이는 컴파운드 보우 파괴력이 강하다고 알려졌다. 컴파운드 보우는 도르래 등 장치를 갖춘 기계식 활이다. 해외에서 사냥도구로도 쓰인다. 갑질 논란을 빚은 양진호 위디스크 회장이 직원 워크숍에서 닭을 쏠 때 쓴 활도 컴파운드 보우였다.
경찰청도 그 살상력을 안다. 지난해 경찰청은 총포화약법 시행령을 고쳐 컴파운드 보우 구매는 규제하려 했다. 이는 양궁협회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경찰청 관계자는 "규제가 스포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업계 우려가 있었다"고 밝혔다.
범죄를 예방하려면 양궁 구매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총 소지가 불가능한 한국에서 활은 그다음으로 살상력 높은 물건일 것"이라며 "어차피 양궁 사용처가 훈련장, 경기장으로 제한되는 이상 허가제를 도입한다고 큰 차이는 없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양궁 스포츠가 위축될 거란 우려도 있다. 양궁 분야 관계자는 "미국, 영국, 호주 등 다른 나라 사례를 봐도 양궁 구매, 소지 자체를 규제하는 나라는 드물다"라며 "활을 범행 도구로 쓴 행위는 분명 잘못됐지만 지탄의 대상이 도구와 종목을 향하면 동호인 활동과 스포츠 자체가 위축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