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집이 불타고 있어."
20일 오전 5시40분 서울 강남구 강남역 인근 매장에서 청소 일을 하고 있는 A씨는 집에서 나와 일터로 향했다. 한창 청소를 하던 중에 "네 집이 타고 있다"는 주민의 전화를 받았다. A씨는 하던 청소를 마무리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A씨가 마을 초입에 도착했을 때 대피한 주민들은 급하게 나와 점퍼 없이 내복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A씨는 "설에 애들 아빠 산소도 가야 하는데…"라며 추위에 붉어진 얼굴로 눈물을 훔쳤다.
불은 오전 6시쯤 발화 지점 아래 집에 살고 있었던 주민 노순표씨(75)가 최초 발견했다. 노씨는 연탄을 교체하려고 집 밖에 나오며 화재 현장을 목격했다. 자신의 집이 다 타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 신고할 새 없이 자체 진화에 나섰다. 근처에 있는 소화기 10여개를 다 소진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영하의 날씨에 전날 밤 내려 지붕에 쌓여 언 눈과 비에도 불은 속절없이 옆 집으로 붙어갔다. 오전 6시33분 소방서 개포대가 선착대로 현장에 도착했다.
노씨는 소방 대원들이 골목 안에 들어가 천장 아래를 진화하지 않고 지붕 위에 물을 뿌렸다며 안타까워했다. 구룡마을은 판자집이어서 추위 때문에 지붕에 단열재를 두껍게 씌운다. 노씨는 "(단열재가 있는) 지붕 위로 물을 뿌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처음에만 잘해도 이렇게 안 커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사이 주민들은 집에서 빠져나왔다. 불이 붙은 4지구 주민들은 소방과 함께 이웃집 문을 두드리며 사람들을 깨웠다. 내복차림에 슬리퍼를 신은 주민들이 속속 대피했다.
구룡마을 주민들은 설 연휴를 앞두고 발생한 화재에 허망함을 느꼈다. 30년 넘게 구룡마을에 살며 자식 둘을 키웠다는 4지구 주민 마모씨(65)는 인근 판자집에 불이 붙은 것을 목격하고 집에서 빠져나왔다.
마씨는 "설 연휴에 우리 시어머니 제사를 지내려고 했다"며 "냉장고에 음식도 많은데 전기가 다 끊겨서 전부 상했을 것"이라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날 정오가 되자 다른 주민들이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할 때도 마씨는 허망함에 캔커피 한 잔을 채 마시지 못했다.
주민들은 마땅한 대피 장소가 없어 뿔뿔히 흩어졌다. 이날 정오쯤 5평 남짓한 컨테이너에 주민 20여명이 바닥에 모여 앉아 기다렸고 이 컨테이너에서 30m 정도 떨어진 구룡전문대 움막에는 주민 3명 가량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다른 주민들은 영하의 날씨에 취재차량이 주차돼 있는 광장에 서서 호텔 이송을 기다렸다. 구청 직원들은 대피한 주민들의 위치를 알지 못해 호텔 이송 때 혼선이 빚어졌다.
오후 1시 호텔에 이송하기로 한 주민들은 최초 17명이었으나 1시 정각에 버스에 탑승한 주민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후 1시19분이 돼서도 구청 직원들은 "파악이 안 된다"며 "지금 다 탔냐"고 서로 물어볼 뿐이었다. 오후 1시22분이 돼서야 총 13명의 주민들이 이송차량에 탑승해 호텔로 향했다.
이날 오전 6시27분쯤 첫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은 5시간 19분 만인 오전 11시46분쯤 불이 완전히 꺼졌다고 밝혔다.
이날 화재로 가건물 비닐 합판 소재의 주택 약 60채를 포함해 총 2700제곱미터가 소실됐다. 500명이 대피했으며 인명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재민은 총 60명으로, 강남구 내 호텔 4곳에 임시로 머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