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9월 4일 야구계를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발생했다. 두산의 전신인 OB 베어스 선수 17명이 당시 감독의 강압적인 지휘 스타일에 반발해 숙소를 이탈한 것이다.
82년 프로야구 원년 우승팀이기도 한 OB 베어스는 그해 개막을 앞두고 시범경기에서 5승 1패를 거두는 등 강력한 우승 후보팀으로 꼽혔다. 4월9일 열린 시즌 개막전 쌍방울 레이더스와의 경기에선 4-3으로 승리하면서 산뜻한 출발을 했다. 8회말 3-3으로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박현영의 적시타와 구원 투수로 나선 박철순의 역할이 컸다. 정규 시즌에서도 시범경기 때 기세를 이어가는 듯 했다. 이대로라면 우승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개막 이튿날 4월10일 열린 쌍방울과의 경기에서는 5-8로 역전패 당한 것. 쌍방울이 에이스급 투수 3명을 투입하는 등 칼을 갈고 나오자 당해낼 수 없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 부부가 잠실구장에 찾아와 경기를 관전하기도 했는데, 현직 대통령이 야구장을 방문하는 건 이례적인 일인 터라 승리를 위한 총력전이 펼쳐진 것.
이 경기에서 쌍방울은 '트리플스틸'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트리프스틸은 1, 2, 3루 주자가 동시에 도루에 성공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KBO리그 역사상 이제껏 트리플스틸은 단 9차례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날 쌍방울과의 경기 이후 OB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5월12일까지는 승률이 50% 안팎으로 8개 구단 중 4위를 유지했는데, 이후 5연패를 당하며 7위까지 내려앉았다. 여기에서 불행은 끝나지 않았다. 또 한 번 5연패가 반복된 것이다. 반면 하위권으로 평가받던 LG는 선두 질주를 이어가며 희비가 교차했다.
6월, 7월에도 OB는 반등의 기회를 마련하지 못했다. 시즌이 끝나가던 9월4일, OB는 군산구장에서 열린 쌍방울과의 경기에서 1-2로 또 한 번 역전패를 당했다. 윤동균 OB 감독은 이날 패배 후 숙소로 이동한 뒤 선수들을 연회장으로 집합시켰다. 윤 감독은 수석코치에게 야구방망이를 가져오라고 시켰다. 선수들이 게임하는 자세가 글러먹었다며 오늘 매를 좀 들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선수들은 반발했다. 주장 김상호는 "최선을 다했지만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다. 못 맞겠다"고 했고, 이어 김형석도 "저도 못 맞겠다"고 동참했다. 그러자 윤 감독은 "못 맞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 일어나"라고 했다. 선참 선수들이 하나둘씩 일어났다.
이같은 상황에 윤 감독은 홧김에 "말을 듣지 않을 거면 차라리 서울로 올라가 버려라"라고 했다. 이에 박철순, 김상호, 이광우, 권명철 등 17명이 숙소를 집단 이탈해 열차를 타고 서울로 갔다. 이들은 바로 다음 날인 9월5일 윤 감독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단 농성을 벌였다.
아직 시즌이 끝나지 않았던 터라 OB는 2군 선수들을 불러올려 남은 1군 경기를 소화해야 했다. 결국 OB는 126경기 중 53승 73패 1무 전적으로 7위로 시즌을 끝냈다. 쌍방울이 8위를 기록하며 꼴찌는 면했지만 개막 전부터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던 터라 사실상 꼴찌나 다름없다는 평가가 나왔다.
윤 감독은 선수들 집단 이탈 사건 발생 이후 5일 만에 지휘봉을 내려놨다. 당시 스포츠서울 보도에 따르면 윤 감독은 경창호 사장에게 최근의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는 뜻을 전하면서도 "폭력 감독이라는 누명은 벗고 싶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구단은 집단 이탈은 명백한 계약 위반이라는 입장을 내고 팀 합류를 거부한 박철순, 김형석 등 고참 선수 5명에게 11월30일까지 참가활동 정지 및 연봉지급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다른 12명에게는 연봉 5% 삭감 지급을 결정했다.
이듬해인 1995년 OB는 이 사건을 딛고 일어나 김인식 감독 체제 하에 74승 47패로 1위에 오르는 기적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