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쿠팡이 조작되거나 허위 사실을 제출했다면 엄중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2차 피해와 증거 오염 유무, 쿠팡 과실 여부를 파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할 방침이다. 다만 쿠팡은 이미 개인정보 유출 피의자를 접촉했으나 경찰은 진행 상황조차 인지하지 못해 '늑장수사'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박정보 서울경찰청장은 29일 오전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쿠팡으로부터 확보한 자료들에 대해 "만약 허위 조작된 자료들을 제출했거나 허위 사실을 수사기관에 제출한 경우 불법 및 위법 사항이 확인되면 엄중하게 책임을 물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쿠팡의 자체 포렌식에 대해 "이례적"이라고 했다.
경찰이 엄중 대응 입장을 밝힌 배경은 최근 불거진 쿠팡의 '셀프 조사' 논란 때문이다. 앞서 쿠팡은 지난 25일 개인정보 유출 피해 규모를 3000명 수준이라며 피의자의 노트북 등 자료를 제출했다. 당시 쿠팡은 경찰에 자체 포렌식 조사를 진행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김범석 쿠팡 의장이 전날 발표한 사과문에도 "유출자 컴퓨터에 저장돼 있던 고객 정보가 3000건으로 제한돼 있었음이 확인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는 반발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쿠팡에 강력히 항의했다고 밝히면서 "민관합동조사단에 의해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쿠팡은 자체조사가 아니라 정부와 협력했다고 재반박하면서 국가정보원을 거론했다. 하지만 경찰은 관련 내용을 사전에 통보받거나 협의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진실게임과 별도로 경찰이 이렇다할 수사 결과를 내놓지 못하면서 사기업보다 조사가 늦다는 지적을 피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쿠팡이 피의자 측과 접촉하고 자체 조사를 진행하는 동안 경찰은 이를 인지조차 못했다.
경찰은 압수물 등 분석을 마치는 대로 다른 침입자가 있을 가능성과 공범 여부 등도 조사한다는 방침이지만 자료가 방대해 시간이 소요될 예정이다. 또 지난 21일 쿠팡으로부터 임의제출받은 자료도 철저한 분석을 거쳐 '증거물 오염' 우려를 해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외에도 추가 2차 피해와 쿠팡의 과실 여부를 중심으로 수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수사기관에 증거물을 그대로 전달해야 하는 게 정답"이라며 "그렇지 않고 세계 3대 기관에 포렌식 조치를 했다 등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추후 (재판 과정에서) 증거 훼손에 대한 이슈가 발생할 소지가 상당히 많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쿠팡의 발표가 경찰 수사과정에 불필요한 혼란을 초래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변호사는 "국민적 관심사가 매우 높기 때문에 경찰에서 공개적으로 수사를 발표하는 게 더 낫지 않았나 싶다"라고 했다.
쿠팡의 보상안 내용이 미흡하다는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날 쿠팡은 개인정보 유출 사고와 관련해 1조6850억원 규모의 고객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대상자는 지난달 말 개인정보 유출 통지를 받은 3370만명의 고객으로 인당 5만원의 구매이용권이 지급될 예정이다. 다만 5만원 구매이용권을 여러 서비스에서 쓸 수 있도록 쪼개면서 '보상안'이 아니라 자사 서비스 사용을 유도하는 '마케팅'이라는 반발을 사고 있다.
남언호 법률사무소 빈센트 변호사는 "과거 개인정보 관리를 잘 못해 유출된 경우 판결로 확정된 금액들이 사실 10만원 정도인데 지금은 유출 수준과 규모가 크다. 쿠팡이라는 플랫폼에서 유출된 건데도 쿠폰을 지급했다"라고 말했다. 황 교수도 "쿠팡 측이 '3000개'라는 표현을 반복한다"며 "진정성 있는 사과라고 느끼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