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퇴근 시간에 놀러가거나 마실 갈 어르신들의 대중교통 무료 이용을 제한하는 것을 연구를 한번 해보라."(3월 24일 국무회의 중 이재명 대통령)
"어르신들의 무임승차를 제한할 계획은 없다."(4월 3일 대한노인회 간담회 중 홍익표 청와대 정무수석)
지하철 무임수송 논란이 다시 불붙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출퇴근 시간대 노인 무임승차 제한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뒤, 정치권은 곧바로 '노인 혐오'와 '복지 후퇴' 사이에서 소란을 벌였다. 하지만 논쟁의 본질은 감정이 아니다. 1984년 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지시로 도입된 제도가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유지될 수 있느냐다.
지하철 할인승차는 1980년 만 70세 이상 노인들에게 지하철 요금 50%를 할인해 주면서 도입됐다. 이후 1984년 5월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100% 요금을 면제해 주는 방식으로 제도가 바뀌었다. 노인복지법에 따라 65세 이상이면 돈이 많든 적든 지하철을 무료로 탈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시 평균수명은 지금보다 훨씬 짧았고, 노인 인구 비중도 낮았다. 이 제도는 초고령사회에 맞춰 설계된 것이 아니라, 권위주의 정부가 복지 이미지를 얻기 위해 밀어붙인 시대의 산물이었다.
지하철 무임승차 대상은 65세 이상 노인, 장애인, 국가유공자 등이다. 이 중 무임승차 대다수는 65세 이상이 차지하고 있다. '무임'이라는 이름이 곧 무제한의 정당성을 뜻하지는 않는다. 전국 도시철도 운영기관들은 불만이다. 서울교통공사 등 전국 도시철도 운영기관 6곳은 5761억원을 국비로 보전해 달라는 공문을 지난 9일 정부에 보냈다. 지난해 전체 무임수송 손실액 7754억원의 74.3% 수준이다. 서울교통공사만 해도 지난해 무임손실이 4500억원 가까이 된다.
공공교통의 재정이 무임승차 손실에 잠식되면, 결국 그 비용은 요금 인상과 서비스 저하로 시민에게 되돌아간다. 이 문제를 단순히 노인 복지의 이름으로 덮어두는 건 책임 회피다. 고령층의 이동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명분은 타당하다. 하지만 그 비용을 왜 도시철도 운영기관과 지방자치단체만 떠안아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국가가 만든 제도라면 국가가 비용 구조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더구나 지금의 제도는 형평성에서도 균열이 크다. 같은 지하철이라도 한국철도공사 구간의 무임손실은 국비로 보전된다. 서울 등 대도시의 시민들은 같은 복지정책을 이용하면서도 지역에 따라 다른 부담을 떠안는다. 이런 구조를 두고 "지자체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방치하는 건, 중앙정부가 만든 제도를 지방정부에 떠넘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대통령의 출퇴근 시간대 제한 검토 발언은 그래서 아예 틀린 방향은 아니다. 혼잡 시간대에 공짜 이용을 줄이거나 시간별 차등을 두는 방식은 무임수송의 본래 취지는 건드리지 않으면서 현실적 부담을 낮출 수 있다. 연령 기준을 조정하거나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 적용하는 방식도 검토할 만하다. 복지란 한 번 정하면 영원히 고정되는 신성한 조형물이 아니라, 사회 변화에 따라 계속 손봐야 하는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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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정치권은 매번 이 논의를 회피해 왔다. 선거가 다가오면 노인 표가 두렵고, 선거가 끝나면 개혁 의지가 사라진다. 그 사이 도시철도는 적자를 쌓고 노후 시설 보수는 뒤로 밀린다. 시민들은 혼잡과 불편을 떠안는다. '공짜'라는 달콤한 말 뒤에는 결국 누군가의 돈과 누군가의 희생이 숨어 있다. 이 사실을 외면한 채 복지의 상징만 붙들고 있는 한 무임수송은 복지가 아니라 재정의 블랙홀이 된다.
대한민국은 빠르게 늙어 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20.3%로 처음 20%를 넘어서며 초고령사회에 공식 진입했다. 2036년에는 고령인구 비율이 30%, 2050년에는 4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노인 이동권은 보장하되, 비용은 국가도 책임지고, 이용 방식은 시대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