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취중 성범죄 피해자 진술' 판단 기준 만든다

양윤우 기자
2026.03.07 09:51
/사진=Gemini

술이나 약물에 취해 기억이 불분명한 성범죄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어떻게 판단할지를 두고 법원 판단이 엇갈리자 대법원이 새 기준 마련을 위한 연구에 착수했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지난 5일 '준강간, 준강제추행죄 피해자의 각성 시 기억의 특성, 진술의 신빙성 판단 요소 및 기준에 관한 연구' 수행을 위한 공고를 냈다.

현재 법원은 성범죄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할 때 일관성, 구체성, 객관적 상당성 등을 주요 기준으로 삼고 있다. 다만 법원행정처는 이 같은 기준이 정상적인 인지 능력을 유지한 상태에서 범죄를 경험한 피해자를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술이나 약물에 취한 피해자에게 그대로 적용하는 데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 유사 사건에서도 재판부 판단은 엇갈렸다. 2024년 8월 주점을 운영하던 50대 여성 A씨는 술에 취해 가게 안에서 잠들었다가 누군가 자신의 가슴 등 신체를 만지는 느낌에 잠에서 깼고 경찰에 "한 남성이 성행위를 했다"고 진술했다.

A씨는 이후 재판 과정에서 "당시 술에 취해 있었고 실제로 성행위는 없었던 것 같다"며 진술을 번복했지만 서울고법은 지난 1월 A씨에게서 남성의 DNA가 검출되는 등 다른 증거가 확인된 점을 근거로 피고인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반면 2023년 10월 20대 여성 B씨가 초등학교 동창과 술을 마신 뒤 성범죄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한 사건에서는 무죄 판단이 나왔다. B씨는 경찰 조사에서 "입맞춤한 기억이 전혀 없다"고 했다가 이후 "입맞춤했었던 것 같다"고 진술을 바꿨다. 이에 창원지법은 사실상 유일한 증거인 피해자 진술이 바뀌어 증명력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행정처는 이번 연구를 통해 준강간·준강제추행 사건에서 피해자가 각성하는 과정에서 기억이 어떻게 형성·변형되는지, 진술 변화가 어떤 특성을 보이는지 등을 살펴볼 계획이다. 아울러 법심리학과 법정신의학 등 관련 분야를 활용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할 보다 정교한 기준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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