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 장기화로 나프타 수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생활 곳곳이 흔들리고 있다. 일상 전반에 쓰이는 기초원료인 탓에 마트부터 카페, 세탁소, 인테리어업까지 가격 부담이 커지는 모양새다. 공급 불안 소식에 미리 사두려는 심리까지 겹치면서 일부 품귀 현상도 빚어지고 있다.
30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국제 나프타 가격은 지난 27일 기준 배럴당 133.74달러다. 이란 전쟁 발발 직전인 지난달 27일과 비교했을 때 94.2% 오른 수준이다.
나프타는 원유를 증류하면서 얻을 수 있는 액체다. 이를 가공하면 플라스틱·비닐·고무 원료가 되는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 화학물질을 얻을 수 있다. 국내 수요 45%가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중동산 비중이 높아 국제 유가 변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날 서울 시내 상권에서는 치솟는 원유 가격과 나프타 수급 불안정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마포구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이기숙씨(58)는 "봄이 되면서 겨울옷을 맡기는 손님들이 많아서 바빠졌는데 드라이클리닝 기름값이 두배 넘게 오르면서 부담이 된다"며 "소규모 가게라 미리 쟁여놓지도 못해서 난감하다"고 말했다.
강동구 세탁소 주인 손모씨도 "이번 주말에 비닐 원재룟값이 오른다고 공문을 받았다"며 답답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손씨는 "포장을 빼서 주는 등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포장재를 많이 쓰는 식음료 업계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프렌차이즈 카페 점주 강모씨는 "본사에서 현재까지 단가인상이나 수급 관련 공문은 내려오지 않았다"면서도 "점주 단톡방에서 쓰레기봉투를 미리 사재기해야 하는 것 아닌지 이야기가 오간다"고 했다. 빵집 사장 이호형씨(33)는 "평소 비닐을 2만장씩 사두는데 전쟁 후 넉넉하게 사놔야겠다고 생각해서 평소보다 일찍 쟁여뒀다"고 말했다.
인테리어·인쇄업계도 가격 인상을 고려할 처지에 놓였다. 타일 가게를 운영하는 50대 이모씨는 "가격 인상에 대한 소문만 무성했는데 지난주에 가격을 5% 올린다는 공문을 받았다"며 "부동산 시장 침체로 가뜩이나 장사가 안 되는데 공급가도 올라가면 소비자가를 올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인쇄업체 관계자 A씨도 "10% 정도 원자재 가격이 오른다고 연락받았다"며 "잉크나 현수막 원단은 해외에서 들여오니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나프타 수급 안정을 위해 수출제한, 매점매석 금지, 재고 관리 등 전방위 대응에 나선 상태다. 특히 사재기 현상이 나타난 종량제 봉투에 대해 공급 문제가 없다며 소비자 안심에 나섰다. 전주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일반 비닐봉지에 폐기물을 배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현장에선 우려 목소리가 여전히 나오고 있다. 이날 편의점과 마트 등 판매처는 대부분 대용량 중심으로 재고가 떨어진 모습이었다.
공덕동 마트 직원 B씨는 "지난주 구매 제한을 뒀는데도 한 시간 만에 동이 났다"며 "매일 아침 쓰레기봉투가 언제 들어오는지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둔촌동 마트 직원 C씨는 "봉투 사재기가 너무 심해서 손님 안내 때문에 목소리가 쉴 지경이었다"며 "지난 24일 구청에서 구매 제한 관련 공문이 내려오면서부터는 조금씩 그런 경향이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마포구 마트에서 만난 경비원 김모씨(75)는 75ℓ 대형 봉투가 한 장도 남아있지 않다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김씨는 "한 시간째 쓰레기봉투를 찾으러 돌아다니고 있다"며 "건물 관리하는데 없으면 큰일인데 지금 근처 아무 데도 봉투가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나프타 수급 불안정에 대한 국민 불안 심리를 잠재우기 위해선 정부가 객관적인 안내를 지속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시월 건국대 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시민들이 관련 소식을 접하면서 과도하게 불안해하며 사재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에서 공급과 수요를 정확히 예측해서 수량을 관리해야 하고 판매가 어려운 상황이 와도 안심시킬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