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압류가 걸려 있던 계좌에 실수로 송금한 돈을 은행이 돌려주지 않아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계좌 주인이 해당 금원을 반환할지에 대한 의사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점, 이미 계좌가 압류에 걸려 있던 점 등을 고려하면 은행이 착오송금 사실을 알고도 해당 금원을 계좌 주인의 대출금과 상계한 것을 문제 삼기 어렵다는 취지다.
6일 법원 등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 민사항소1-2부(부장판사 김우정·차은경·장재윤)는 최근 혜인건강이 "부당 이득금을 돌려달라"며 NH농협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 항소심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2022년 4월 혜인건강이 거래처 계좌로 보내야 할 1억2000만원을 실수로 다른 회사인 A사 명의의 농협은행 계좌로 보냈다. 혜인건강은 착오송금을 깨닫고 같은 날 곧바로 반환을 요청했다.
하지만 농협은행은 A사 명의 계좌에 이미 다른 채권자들의 압류가 걸려 있어 바로 돌려주기 어렵다고 답했다. A사는 농협은행에 5억원의 대출금도 갚아야 하는 상태였다. 이후 농협은행은 해당 계좌에 들어온 1억2000여만원을 A사의 대출금과 상계처리했다. 상계는 서로 주고받을 돈을 맞계산해서 없애는 행위다. 혜인건강이 실수로 보낸 돈을 은행이 대신 가져간 셈이다.
이에 혜인건강은 농협은행이 착오송금 사실을 충분히 알았고 이후 A사 측과 압류채권자들도 반환에 동의한 만큼 은행이 돈을 가져가선 안된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 과정에서는 농협은행의 상계처리가 권리남용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됐다. 권리남용이 인정된다면 상계행위도 무효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2심 모두 혜인건강의 청구를 기각하고 농협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혜인건강의 상고를 접수하고 심리를 진행하는 대법원 민사1부는 어떤 판단을 내릴까. 대법원은 2010년 착오송금 사건에서 송금인이 잘못 보냈다며 반환을 요구하고 수취인도 이를 인정해 돌려주겠다고 한 경우라면 은행이 그 돈을 자기 대출금 회수에 쓰는 상계는 원칙적으로 신의성실의 원칙 위반 또는 권리남용이라고 판단했다. 자금이체 시스템을 운영하는 은행이 이용자의 실수를 계기로 예상하지 못했던 채권회수 이익을 취하는 행위를 보호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예외도 뒀다. 예금채권이 이미 제3자에 의해 압류돼 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상계를 달리 볼 수 있다고 했다. 이 사건 1·2심 법원도 이미 압류가 선행돼 있었고 상계 당시 수취인의 명확한 반환 승낙도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제3자 압류라는 예외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가 핵심 쟁점이라고 전망했다. 한 법조인은 "당사자끼리만 문제 되면 당연히 돌려줘야 맞지만 제3자가 개입되면 문제가 달라진다"며 "착오송금이 되면 송금인은 수취인에 대해 부당이득반환채권을 가지게 되고 은행도 계좌 명의인에 대한 대출금 채권을 가진 채권자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채권자는 평등하다는 게 대원칙"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법원이 예외적 특별사정으로 든 '제3자가 압류한 경우'가 과연 지금 같은 경우까지 염두에 둔 것인지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이 기존 판례를 유지하면 압류가 선행된 이상 은행의 상계권은 비교적 폭넓게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 반면 원고 측 주장을 일부 받아들이면 '압류 예외' 자체는 유지하되 은행이 착오송금 사실을 알고도 먼저 상계한 경우까지 예외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보다 엄격한 제한기준을 세울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