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날만 골랐다, 단서는 걸음걸이…전국서 "축의금 사라져"

이현수 기자
2026.04.19 13:52

[베테랑]강원경찰청 광역과학수사1팀 길상수 경위, 과학수사계 강슬기 경사

[편집자주]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61만건(2025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10년간 전국 주택 곳곳에서 1억원 상당의 축의금과 패물을 절도한 혐의를 받는 60대 남성 A씨가 CCTV 영상에 포착된 모습./사진제공=강원경찰청.

"아들 결혼식에 다녀오니 축의금이 사라졌어요."

2020년 4월 강원 횡성군, 같은해 9월 강원 원주시, 2024년 5월 강원 춘천시. 강원도에서 같은 수법의 주택 절도 사건 3건이 발생했다. 피해자가 자녀 결혼식으로 집을 비운 사이 패물과 수천만원에 달하는 축의금이 사라졌다.

사건들은 지난해까지 미제로 남았다. CCTV 영상과 범인의 족적은 남았지만 인적사항이 특정되지 않아서다. 범인이 남긴 단서는 CCTV 영상 속 절뚝거리는 걸음걸이뿐이었다.

사건들 현장 감식은 길상수 강원경찰청 광역과학수사1팀 경위가 도맡았다. 길 경위는 강원도 내 10곳이 넘는 경찰서를 포함해 전국 각지 수십명의 형사들을 만나며 유사 사건을 추적했다. 끈질긴 수사 끝에 유사 수법을 겪은 형사들이 나타났다. 몇몇은 직접 증거 자료를 보내왔다.

전환점은 지난해 4월이었다. 길 경위가 CCTV 영상을 보여준 순간 한 형사가 절뚝거리는 범인의 걸음걸이를 알아봤다. 5년간 쫓아온 절도범의 행방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확인 결과 범인은 60대 무직 남성으로 2024년 9월 강원 양구경찰서에서 절도 혐의로 검거돼 재판을 받고 있었다. 경찰은 피고인의 족적과 범행 수법을 대조해 3건의 절도사건과 동일 인물인 것을 확인했다.

범인은 지역 일간지에 실린 결혼식 소식을 이용해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 그는 농협 조합장 등 지역 유력 인사의 자녀 결혼 소식을 확인한 뒤 '축의금을 내고 싶다'며 피해자 주소를 알아냈다. 면·읍 단위 지역에서 결혼식 전날 혼주 자택에 미리 방문해 현금으로 축의금을 전달하는 문화를 노렸다.

'10년간' 범행…미제사건 밝혀내

지난 8일 강원경찰청에서 만난 광역과학수사1팀 길상수 경위, 과학수사계 강슬기 경사./사진=이현수 기자.

길 경위는 범인의 여죄도 의심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범죄분석을 담당하는 강슬기 강원청 과학수사계 경사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길 경위와 강 경사는 각각 14년, 11년째 강원청 과학수사계에 몸담고 있는 '과학수사' 베테랑이다. 길 경위가 현장에서 지문·CCTV·족적 등 단서를 수집하면, 강 경사는 범죄분석과 3D 얼굴인식 등 방법으로 범행을 입증하며 함께 수사하고 있다.

강 경사는 '결혼식', '축의금' 등 키워드를 단서로 10여년간 발생한 유사 수법의 미제 절도사건을 모조리 찾아냈다. 강 경사와 길 경위는 며칠 밤을 새워 수천건에 달하는 사건들을 하나하나 대조했다. 각 사건 별 등록된 DNA와 족적, CCTV 영상 등을 분석해 미제 사건들이 동일범의 수법인 것도 밝혀냈다.

결국 경찰은 같은 범인이 2014년부터 강원도·경상도·전라도 등 전국 46곳에서 범행을 이어온 정황을 파악했다. 그 가운데 증거가 확실한 10건을 입건했다. 이후 지난 2월 피의자를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조사된 피해액만 약 1억원에 달했다.

길 경위는 "광역팀으로서 여러 경찰서 관할 사건에 두루 출동하는 만큼 흩어진 사건들을 잇는 연결고리가 되고자 노력했다"며 "2년 전 피해자에게 꼭 잡겠다고 호언장담했는데 약속을 지켜 뿌듯했다"고 말했다.

이어 "사건을 해결하고, 피해자께서 웃으며 감사하다고 말씀해주실 때 가장 뿌듯하다"며 "앞으로도 경찰을 믿어주시면 반드시 끝까지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덧붙였다.

강 경사도 "한 건의 범행으로 가벼운 처벌을 받을뻔한 피의자가 죗값을 치르게 됐다"며 "담당 수사팀, 이전 사건을 수사했던 타 지역 경찰관들까지 모두가 협업해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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