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충실히 소화하면서도 내적 공허함을 느끼는 이른바 고기능 우울증이 젊은 세대 사이에서 화제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이 같은 현상이 우울증에 대한 불필요한 확대 해석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3일 소셜 데이터플랫폼 블랙키위에 따르면 지난달 고기능 우울증 검색량은 3000여건을 기록했다. 6개월 전과 비교하면 검색량이 6배나 늘었다.
지난해 11월 미국의 정신과 전문의 주디스 조셉의 도서 '고기능 우울증'(high-functioning depression)이 출판, 베스트셀러에 등극한 이후로 이 용어가 유명해졌다. 겉으로 보기에 일상생활을 문제없이 수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에는 우울감과 무기력감이 지속되는 상태를 일컫는다. 회사 근무를 성공적으로 해내고 운동·취미 등을 더한 삶을 살지만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는 의미다.
책에 따르면 '즐거웠던 활동에서 더는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느껴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 등이 주요 증상으로 거론된다. 실제 SNS(소셜미디어) 등에서 이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직장인 A씨(27)는 "근무에 취미생활까지 하루 일상을 꽉 차게 마무리했음에도 텅 빈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고기능 우울증은 정식 의학 용어가 아니다. 고기능 우울증과 유사한 지점이 있는 의학적 개념으로는 지속성 우울장애가 있다. 기분 저하가 장기간 지속되는 상태를 뜻한다. 이 밖에 일상적 일에서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무쾌감증', 일을 할 때 밝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감정을 제대로 발산하지 못하는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도 있다.
전문가들은 고기능 우울증이 마케팅 용어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아직 해당 개념을 뒷받침할 만한 연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고기능 우울증 개념이 더 퍼질수록 일반인들로 하여금 가벼운 스트레스성 증상을 확대 해석하게 하는 등의 일이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 윤대현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고기능 우울증은 정식 진단명이 아닐 뿐 아니라 제대로 된 역학조사도 이뤄지지 않은 용어"라며 "유사한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 이들에게는 '스트레스 증상'으로 진단을 내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기능'이라는 단어의 정의부터 모호하다"며 "오히려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에게만 우울증이 많이 찾아오고 성공한 사람은 가능성이 적다는 우등의 개념을 확산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채정호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역시 "의학적 측면에서는 우울증에 고기능이라는 단어가 붙는 자체가 어폐가 있다"라며 "한국 사람들이 책임감이 강해 생활을 최대한 이어가려는 특성이 있지만 그것이 기능을 잘 수행하는 것이라 단정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반대로 우울증이 아닌데 '나는 고기능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생각해 스스로의 상태를 합리화하는 진단의 무기화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며 "고기능 우울증이라는 용어가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