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의 저연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초등학생 8명 가운데 1명은 학교폭력 피해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도움을 요청해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반복 피해와 방관의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BTF푸른나무재단이 19일 발표한 '2025년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초등학생의 학교폭력 피해 경험률은 12.5%다. 중학생(3.4%)과 고등학생(1.6%)보다 높은 수치다. 특히 초등학생 피해 경험률은 2년 전(4.9%) 대비 2.5배 수준으로 늘었다. 이는 전국 초·중·고등학생 8476명과 학부모 52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다. 재단은 25년째 전국 단위 학교폭력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는 학교폭력의 저연령화와 함께 신체폭력 재확산이 두드러졌다. 피해 유형 중에는 언어폭력 비중(23.8%)이 가장 컸지만 신체폭력(17.9%)도 증가세를 보였다.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이후 2020~2024년에는 사이버폭력이 신체폭력보다 많았지만 지난해 다시 신체폭력 비중이 사이버폭력을 넘어섰다.
김미정 상담본부장은 "초등학생의 신체폭력 인지율은 55.3% 수준"이라며 "저연령 학생들이 학교폭력과 장난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한 채 갈등을 신체적 방식으로 표출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게임 도중에서의 사이버폭력 문제도 여전하다. 특히 게임은 사이버 갈취·강요, 사이버 성폭력 피해 장소 1위로 조사됐다. 김 본부장은 "온라인게임 피해 경험 학생의 온·오프라인 중복 피해 경험률은 95.7%로 높은 수준"이라며 "게임이 단순한 놀이 공간을 넘어 현실 관계와 결합한 복합 피해의 주요 경로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피해가 반복돼도 도움 요청에 대한 신뢰가 낮아진다는 점이다. 반복적으로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한 학생 비율은 2년 전보다 약 1.4배 높아졌다. 반면 도움을 요청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답한 비율은 최근 5년 새 약 3배 상승했다.
학교폭력을 목격한 학생의 절반 이상은 개입하지 않고 방관했다고 응답했다. 방관의 이유로는 '돕는 방법을 모른다'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재단은 도움 요청의 효능감이 낮아지고 방관이 확산하는 악순환이 지속된다고 분석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학교폭력 발생 시 대화나 중재보다 법적 분쟁으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실제 학교폭력 쌍방 신고사례는 2년 전보다 30%가량 늘었다. 학교폭력 피해자 부모 박지연씨(가명)는 "피해 증거를 모아 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했더니 가해자 측에서는 사과보다 변호사 선임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고 말했다.
재단은 학교폭력 대응이 단순 처벌이나 사안 처리에 머물러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이 폭력을 명확히 인지하고 피해 회복과 관계 개선까지 이어질 수 있는 교육적 대응체계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가정·지역사회·정부 등의 책임 있는 역할과 전문성 확보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재단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지방선거를 앞둔 교육감 후보자들에게 학교폭력 예방부터 회복까지 이어지는 AI(인공지능) 기반 통합지원 플랫폼 마련과 △피해 학생 전담 지원센터 △가해 학생 교정·치료 특화센터 △참여형·체험형 예방교육 강화 등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