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에릭 슈밋 전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애리조나대 졸업식 축사에 나섰다가 학생들로부터 거센 야유를 받았다. "이젠 인공지능(AI) 에이전트와 팀을 이뤄 혼자서는 절대 달성할 수 없었던 일을 해내게 될 것"이라는 AI 예찬론이 발단이다. 빅테크 거물이 취업을 앞둔 청년들의 반발에 직면한 장면은 미국 사회에서 확산하는 AI에 대한 불안과 반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업들은 AI가 풍요의 시대를 열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기술의 최전선인 실리콘밸리에서조차 인간 수준의 AI가 등장하면 '영구 하층민' 전락에 대한 우려가 팽배하다는 게 외신의 지적이다. 3월 미국의 한 설문조사에선 AI에 대한 순호감도가 -20%에 달했다. 부정적 응답이 긍정적 응답을 훌쩍 웃돈 것이다. 논란이 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민정책에 대한 평가(-19%)보다 낮은 수준이다. 미국인들이 불법 이민보다 AI를 더 위협적인 존재로 여긴다고 풀이할 수 있다. 또 다른 조사에선 미국 젊은층 가운데 'AI에 희망을 느낀다'고 답한 비율이 18%에 불과했다.
이런 두려움은 온라인 밈에서도 드러난다. AI 시대의 계층 구조를 극단적으로 묘사한 한 그림이 대표적이다. 그 속에서 세계는 두 층으로 나뉜다. 지상에는 오픈AI, 앤트로픽, xAI 같은 거대 AI 기업들이 높은 울타리 안에 자리 잡았다. 지하에는 생산성 경쟁에서 밀려난 영구 하층민이 모여 "AI가 다 해결해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에 기대거나 토큰을 구걸한다. 그 경계에선 휴머노이드 로봇과 CCTV가 두 계층이 섞이지 않도록 철저히 감시한다. 웃어넘기기엔 그 안에 담긴 메시지가 뚜렷하다.
기술 혁신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흐름에 올라타지 못한 이들의 불안과 박탈감도 커지기 마련이다. 이를 방치한다면 그 어떤 혁신도 이점을 누리기 어렵다. 지난 3월 샌프란시스코 노스비치에선 한 남성이 샘 올트먼 오픈AI CEO의 자택에 화염병을 던졌다. 인디애나폴리스에선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를 승인한 시의원이 한 시민에게 공격을 당했다. AI가 만들어낼 미래에 대한 공포가 적대감을 넘어 실제 행동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신호다.
지난 3월 알렉스 카프 팔란티어 최고경영자(CEO)는 한 토론회에서 "AI에 대한 가장 큰 도전 과제는 정치적 불안정"이라고 말했다. AI의 성패는 기술 자체보다 사회가 그 파괴적 변화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의미다. 기술의 속도와 성과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변화의 흐름 속에서 커지는 불안과 균열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