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도 헌법 지켜야" 법원, 재판지연 심사

이혜수 기자
2026.06.18 04:29

헌법소원사건 4년째 계류, 사상 첫 의견요청서 발송
法 "헌법상 기본권 침해"… 일각 "간단한 사안 아냐"

법원 깃발(왼쪽)과 헌법재판소 깃발(오른쪽)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사진=뉴스1

헌법재판소가 헌법소원 심리를 늦춰 청구인의 기본권이 침해됐는지 법원이 심사하기로 했다. 헌재가 일하지 않음을 법원이 문제 제기한 것은 처음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50부(형사수석부장 전보성)는 17일 언론공지를 통해 "헌법 제107조 제2항에 근거해 헌재의 부작위 처분(재판지연)으로 인한 기본권 침해 여부의 심사를 개시한다"고 밝혔다. 법원이 헌재의 재판지연을 심사하기로 한 것은 처음이다.

형사합의50부가 지난 12일 헌재에 헌법재판 지연 사유에 관한 의견요청서를 발송했다. 법원이 심사개시의 근거로 삼은 헌법 제107조 제2항은 '명령·규칙 또는 처분이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여부가 전제되는 경우에 대법원은 이를 최종적으로 심사할 권한을 가진다'고 정한다. 법원은 헌재의 재판지연이 해당 조항에서 말하는 헌법·법률에 위반되는 '처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구체적으로 형사합의50부는 자신들이 심리 중인 사건의 피고인 A씨가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제13조 제1항 등에 대한 위헌소원을 헌재에 제기했는데 헌재가 약 4년간 심리를 진행하지 않아 A씨의 기본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법원에 따르면 A씨는 2020년 10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2022년 5월 1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A씨는 1심에서 해당 법률에 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신청을 했으나 법원으로부터 기각결정을 받았다.

A씨는 결국 2022년 6월 헌재에 헌법소원을 접수했고 헌재에서 해당 법률이 위헌인지 심리 중인 상태다. 이에 A씨의 2심을 맡은 형사합의50부는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해당 법률에 대해 헌재가 어떤 결론을 내리느냐가 재판결과를 좌우할 변수가 될 수 있어서다.

이와 관련, 형사합의50부는 "법원과 A씨는 해당 사건 결론의 전제가 되는 헌법소원 결과를 보기 위해 약 4년간 대기하고 있고 기소된 지 6년 가까이 지났다"고 지적했다.

이에 형사합의50부는 헌재에 심사진행 단계 및 지연 사유 등의 내용이 담긴 의견요청서를 보냈다. 재판부는 이날로부터 1개월 이내 헌재의 답변이 담긴 의견서를 제출할 것을 요청했다.

형사합의50부는 "모든 국가권력이 헌법의 구속을 받듯 헌재도 헌법의 구속을 받아야 한다"며 "헌재의 심리 지연으로 피고인(A씨)이 약 4년간 불확정한 지위에 놓였고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 헌법상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볼 수 있는 사안"이라고 했다.

반면 헌재가 헌법소원 심리를 지연한 사안이 법원의 심사대상이 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헌재 관계자는 "법원은 헌재의 헌법소원 결과가 A씨 사건의 '전제'가 된다며 문제를 삼는데 헌재는 헌재대로, 법원은 법원대로 알아서 판단하면 된다"고 했다. 헌재가 헌법소원을 심리 중이어도 법원이 재판을 반드시 정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이 관계자는 또 "A씨가 헌법소원을 제기한 법률이 위헌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면 당초 법원이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했어야 하는데 A씨의 신청을 기각했다"며 "A씨가 청구한 헌법소원은 간단히 결정할 사안이 아니어서 계속해서 심리 중인 것으로 안다. 심리를 고의로 지연할 수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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